회사가 나를 버리기 전에, 나는 내 삶을 선택했다
나는 팀 내에서 오래된 사람 중 하나였다.
성과는 무난했고, 실수도 없었다.
그게 오히려 문제였다.
무난하고, 평범하고, 자리를 오래 지킨 사람은
가장 먼저 ‘정리대상’이 된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았다.
몇몇 선배들이 이유 없이 사라졌다.
무연히 자리만 치워진 책상들.
그 자리에 ‘권고사직’이라는 말은 놓이지 않았다.
대신 ‘전직 지원’, ‘인생의 전환기’ 같은 포장된 말들만 떠돌았다.
그리고 어느 날, 내 이름도 리스트 어딘가에 오르기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
나는 그날 퇴근 후 처음으로 ‘투자’를 검색했다.
주식, ETF, 배당, 채권...
이해도 되지 않는 단어들이 가득했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움직였다.
회사 밖의 세계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내 삶을 지키는 방법’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이
그날따라 낯설지 않았다.
연차가 쌓일수록 연봉은 느는데,
회사는 점점 내 자리를 줄여갔다.
성과는 '전년 대비',
미래는 'AI 대체 가능성'이라는 말로 측정되었다.
나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비용’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돈이 나를 지켜줘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월급의 절반을 나누기 시작했다.
ETF를 샀고, 배당주를 모았고,
지루하더라도 버티는 법을 배웠다.
그 이후 나는 다른 방식으로 아침을 맞았다.
출근 전, 포트폴리오를 살펴보고
저녁엔 기업 분석을 하기 시작했다.
회사일은 여전히 했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퇴직금이 들어오면 어떤 종목에 넣을까’라는
상상이 현실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그때부터 나는
회사에 의존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놀랍게도 나는 명단에서 빠졌다.
갑작스러운 프로젝트 성과 때문이었다.
웃음이 났지만, 마음은 이미 떠나 있었다.
이젠 회사의 선택보다
나의 선택이 더 중요해졌다.
누군가의 승인 없이도
나는 나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회사 밖 세상은 여전히 낯설지만
그 안에서 나는 매일 조금씩 자란다.
책을 읽고, 숫자를 해석하고,
내 돈의 흐름을 따라가며
내 미래를 그린다.
‘투자’란 단어는
더 이상 숫자가 아니라
내 삶을 지키는 감정이 되었다.
이제 나는 권고사직이 두렵지 않다.
내가 나를 준비시켰기 때문이다.
회사가 나를 버리기 전에
나는 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지금도 매일 내게 수익과 의미를 함께 안겨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