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반가워. 나랑 친구 할래?

- 조카와 친해지는 중입니다.

by Bell

조카가 커가면서 우리 집의 황량함을 실감하게 되었다. 아무리 집을 뒤져봐도 놀이와 어울릴 만한 ‘마땅한 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식으로 산 환심은 간식을 먹고 나면 사라지고,

새로운 흥밋거리는 파릇파릇한 동심 앞에 금방 시들해졌다.


이불로 썰매놀이를 해보고, 이불로 숨바꼭질도 해보고, 이불 위에 장난감을 펼쳐 놓다 보면(이불 수난시대) 육아는 아이템빨이라는 말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 때마다 다음엔 조카와 재미있게 놀 수 있게 준비해야지 생각하지만 일상의 패턴 앞에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그러던 어느 날 조카가 진열해 놓은 장식품을 몸소 내 앞으로 가져왔다(이거 어때?).

먼지를 닦아낼 때를 제외하고는 붙박이장과 다를 바 없어서 보이지 않던 그들의 존재를 조카가 세상 밖으로 꺼내준 것이다.

나는 그들을 통해 조카와 더 친해지고자 이름을 지었다(작명이라고 할 수 없는 코끼리아줌마, 다람이...).

그리고 그들의 모습을 빌려 ‘밥은 제자리에서 먹기’, ‘친구에게 양보하기’와 같이 어쩌면 놀이와 교육을 가장한 잔소리를 했다.


그럼에도 조카는 집에 오면 신발을 벗자마자 그들부터 데려왔고, 까만 구슬 같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나는 그 눈빛이 실망하지 않도록 목소리를 바꿔가며 코끼리가, 다람쥐가, 개구리가 되었다(대화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목소리가 똑같아졌지만... 조카는 눈감아 주었다).


하루는 조카가 작은 손으로 그들을 데려오다 코끼리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충격으로 코끼리 코가 떨어졌고(코가 떨어진 코끼리라니 코끼리야, 미안해), 어른들은 조카의 귀여운 반응을 보려고 “이거 누가 이랬어?” 하고 자꾸 물었다. 조카는 미안한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는데, 놀다가도 생각날 때면 코끼리 코를 매만지곤 했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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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나는 부직포로 된 손인형을 주문했다. 이벤트가 필요했고, 조카의 관심이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기 때문이다(유행에는 둔감하지만 조카의 변해가는 흥미에는 발 빠르고 싶다...).


도착한 택배를 뜯어 부직포로 된 도안을 펼쳐보았다. 친절하게 칼질까지 되어 있어서 손으로 떼어낸 후 털실로 바느질만 해주면 되어서 아주 간단했다(고 생각했다). 그저 약간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다)만 투자하면 되는데 다음날 조카를 보기로 해서 마감이 촉박했다.


처음 토끼는 쉬웠다. 완성본까지 귀여워서 마음이 깡총깡총했다. 두 번째 코끼리에서는 코가 깨진 코끼리가 생각나 조금 더 정성을 들였다. 귀여운 토끼에 듬직하고도 귀여운 코끼리가 더해지니 마음이 다정해졌다. 그런데 마음과 달리 눈도 손도 약간 뻑뻑해지기 시작했다. 그냥 두 친구만 할까... 짧고도 강한 유혹이 스쳤지만 다시 바늘을 집었다.


조카를 만나는 날 가방에 세 친구를 고이 넣었다. 그리고 조카를 만났을 때 가방 안에 손을 넣었다가 인형을 끼워 인사했다.


“안녕, 만나서 반가워. 우리 같이 놀래?”


조카와 노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