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대한 믿음을 나는 고전주의라 부른다. 말에 대한 의심은 낭만주의라 부른다. 고전주의자는 미래를 믿는다. 낭만주의자는 자신이 실망하게 될 것이고 자신의 욕망은 결코 실현되지 못할 것임을 안다. 그는 세상이 말로 표현될 수 없으며 말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1967년 폴오스터 산문집> 김석희 민승남 이종인 황보석 옮김
흔히들 재능이 있으면 느리다고들 표현한다. 천재는 외려 학교성적이 좋지 않았다는 이유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재능에 대해 그런 애매모호한 정의를 내리고 싶지는 않다. 재능 있는 사람들이 가장 빠르다. 그러나 그것이 성적으로 결부되지 않는 것일 뿐이다. 이런 정의를 내리는 이유는 나에게 재능이란 성장속도 그 이상 이하도 아니기 때문이다.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비정형적인 결과를 내놓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우주적 확률을 모두 끌어다 써서 그게 가능해진다 할 지라도, 그 사람이 앞으로 지속적인 결과를 내놓으리라고는 장담 할 수 없다.
점점 하면 할 수록 잘하는게 무엇인지 모호해진다.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의 실력이 있지는 않다. 그러나 직관으로 이게 맞다고 느끼는 것이다. 어떤 수준에 진입하면 외부의 성과가 중요해지지 않는 순간이 찾아온다. 단지 내가 하는 것에만 초점을 두어 살아가게 된다. 성적이 뭐가 그리 중요한지 이제는 타격이 없는 때가 존재한다.
나는 재능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지만, 답을 찾지 못했다. 그것은 이제 나에게 의미 없는 것이라기 보다는 초월적인 무언가로 넘어가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재능은 존재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성장속도라는 어떤 함수 관계 같은 정의에서 끝나버린 것이다.
나의 믿음은 폴 오스터에 의하면 무엇으로 분류 될까. 재능이라는 것은 없는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언어로 붙잡는다. "너는 재능이 있는 것 같아."라는 선생님들의 칭찬이나 자신의 감각이 우리의 재능을 확신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소리를 듣는 사람들도 좋지 못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걸 많이 보게 된다. 결국 재능의 증명은 성과이기 때문이다. 압도적인 성과가 재능을 증명한다. 여기서 성과에 대해 두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나의 능력을 끝까지 밀어 붙여서 얻어내었다. 나의 능력이 시운에 맞아 압도적인 결과를 내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을 내었을 때는 이미 그것의 도구들이 다 나왔던 상태라고 한다. 리만 기하학이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의 이론이 어떻게 되었을지는 사실 예측할 수 없는 문제이다. 매일 특허청에 근무하며 공부를 병행했던 그의 노력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지도 모른다. 따라서 시대의 운은 결과에 중요하다.
따라서 고전적 합리주의자라면 노력에 대해 믿겠지만, 낭만주의자라면 노력에 대해 의심한다. 재능은 말로 붙잡을 수 있는게 아니다. 고전적이든 낭만적이든 재능은 우리의 인식을 벗어나있다. 그러니 재능에 대한 도달을 바라는 노력만이 언어로 붙잡을 수 있는 것에 해당한다. 그러나 노력은 우리가 정의한 재능이 아니다. 그렇기에 나의 정의는 어찌보면 현상학적인 함수로만 나타나는지도 모르겠다.
어짜피 인생에서는 노력 밖에 할게 없다. 재능은 다시말하지만 우리의 것이 아니다. 단지 우리가 그렇게 규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키가 2m가 넘어가는 것도 재능이다. 그러나 그것이 노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미 유전자가 크게 작용한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해버렸기 때문이다.
재능에 대해 생각해도 그것에 좌절하지 않는 것은, 그냥 그거 밖에 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에서 나온다. 재능이 없다고 할 지라도 그냥 재밌으니 하는 거다. 가끔은 이런 노력에 대해 기대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좌절된다. 그럼에도 하는 것은 순전히 그 행위가 재밌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과에 대해 재촉하는 것은 나의 지론에 의하면 무의미하다는 것이 된다. 노력이 필요하지만 운도 맞아야 한다. 상급자가 닥달하는 것은 바로 보여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것에 능력이란 것과는 하등 상관이 없다. 성적이 잘 나온다고 재능을 확신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재밌다고 재능이 있다는 것도 아니다. 단지 내가 정해야 한다. 나는 무엇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고 정해야 한다. 그것이 후에 암초에 부딪혀 무너지는 배가 될지라도 그것을 밀고나가야 한다. 그것이 항해이기 때문이다. 바다를 건너는 선원들의 마음으로 재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나의 배가 거기에 닫기를 바라면서. 진수식에 아직도 샴페인 병을 깨드리는 이유는 우리의 삶이 아직도 미신으로 가득차있기 때문이다. 뉴턴의 세계관이 모든 것을 설명했으면 좋겠다. 미래의 예측이 가능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것이 차원하나 이상을 필요로 하는 일임을 안다. 그것이 거의 신의 영역에 가까운 일임을 우리는 안다. 그렇기에 재능에 대해 회의하는 것이다. 배에는 온갖 별명이 붙는다. 여자의 이름, 모비딕, 창녀 등. 모든 영물과 천박한 이름들을 가져다 붙인다. 그것의 이유는, 바다라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압도감을 피하기 위해서이지 않을까. 바다는 모든 것을 품는다. 천박하든 신성하든 바다 앞에선 무용하다. 재능은 바다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