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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의 겨울을 여는 음악,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

누군가의 마음의 겨울에서, 나의 계절을 듣다.

by 구름 위 기록자

두바이의 겨울, 그리고 브람스


아침 창을 여니, 두바이의 겨울이 다가왔다.
햇살 사이로 선명하게 드러난 마천루,
해가 질 무렵 노을빛으로 물드는 하늘이
겨울이 왔다는 조용한 신호처럼 느껴진다.


요즘 아침마다 내가 제일 먼저 하는 일은
그 겨울의 공기를 집 안 가득 들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계절의 공기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을 고른다.
(두바이의 겨울은 한국의 초가을 같은 온도다.)


나는 늘 그 초가을을 좋아했다.
하늘은 유난히 푸르고, 바람은 공기의 향을 품고 있었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 계절은

‘느낀다’라기보다 ‘스며든다’라는 말이 어울렸다.
가을은 오감으로 느끼는 계절이었다.


오늘, 이 선선한 공기와 어울리는 곡은
브람스 교향곡 제3번 3악장.
세상의 뜨거웠던 여름을 차분히 놓아주는 곡,
아름다운 가을을 미리 그리워하게 만드는 곡이다.


이 곡을 들을 때면,
무언가 떠나보낸 것에 대한 아쉬움이
조용히 가슴을 스친다.
도입부의 현악기 선율이
“아, 가을이구나” 하고 마음을 깨운다.
이후에 이어지는 목관과 호른의 음색은
가을의 묵직한 색감을 더해주며
생동감 많던 여름의 온기를
조용히 눌러주는 듯하다.


흥미로운 건,
이 곡이 1883년 여름에 작곡되었다는 사실이다.
에어컨도 없던 그 무더운 여름에
이토록 가을 정서 가득한 악장을 쓰다니.
브람스는 당시 ‘헤르미네 슈피스’라는 여인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은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이 곡은 그의 상실과 쓸쓸함에서 태어난 음악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의 겨울이
나에게는 계절의 아름다움으로 들려온다.
그의 상심이 너무 아름다워서,
나는 오히려 포근함을 느낀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래서 더 인간적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오늘 하루만큼은 브람스 교향곡 3번 3악장과 함께
지금 이 공기와 계절, 그리고 마음의 온도를
차분히 음미해 보길 바란다.


이 곡의 유튜브 댓글에

한 분이 시를 인용해 감상평을 남겼다.
샤를 보들레르의 시 중 일부다.

“물어보아라.
바람이든, 물결이든, 별이든, 새든, 시계든
지나가는 모든 것에게 지금 몇 시냐고.
그러면 그들은 대답할 것이다.

‘이제 취할 시간이다.’

시간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취하라.
술이든, 시든, 덕이든, 당신 마음대로.”


오늘 이 선율과 함께,

당신이 취할 수 있는 무언가에서
당신만의 아름다움을 느끼길 바란다.


그것이 음악이든, 글이든, 계절이든.


https://youtu.be/PhBtjLiHWGs?si=GZigC_qd2XMEfpK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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