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지 않은 것들을 남겨두는 마음에 대하여
봄은 늘 그렇게 온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공기 속에
조금 더 부드러운 온기를 섞어 넣으며,
아주 티 나지 않게
계절을 조금씩 바꿔 놓는다.
겨울 내내 단단히 닫혀 있던 창문을
괜히 한 번 더 열어 보게 하고,
이유 없이 햇빛이 머무는 자리를
눈으로 따라가게 만들고.
그러다 문득
아, 봄이구나
뒤늦게 알아차리는 순간이 온다.
그때쯤이면 나는
어김없이 프리지어를 집으로 들인다.
이맘때가 되면 꽃집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노란 봉우리가 조롱조롱 달린 가지들이 서로 기대듯 놓여 있는 모습을 보면, 아직 피지 않은 봄을 한 다발 안고 오는 기분이 든다.
작게 묶인 세단을 골랐다.
종이로 감싼 꽃다발을 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끝으로 전해지는 은은한 향기가 발걸음을 자꾸 늦춘다.
집에 도착해 화병에 꽂으면
처음엔 어딘가 많이 비어 보인다.
가지 사이사이로 공기가 훤히 드나들고,
봉우리들은 아직 입을 다문 채 조용히 고개를 떨군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휑한 순간이 좋다.
곧 채워질 것을 알고 있는 여백은
기다림마저 따뜻하게 만들 걸 알기에..
아침에 우연히 한 글을 읽었다.
피지 못할 것 같은 어린 프리지어 봉우리를 미리 잘라냈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화병 앞에 서서
나도 그럴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가위를 들었다가
한참을 그대로 서 있었다.
하지만 망설이는 마음속엔 작은 봉우리는 새 꽃을 피우기 위한 문열이 같다는
생각이 들어 짠하고 안쓰러웠다.
이미 한 번 잘려
이곳까지 오게 된 꽃가지인데,
아직 피지 않았다는 이유로
또 한 번 잘라내는 일은
왠지 모르게 잔인하게 느껴졌다.
나는 이내 가위를 내려놓고
대신 물을 갈았다.
차가운 물이 유리병을 타고 흐르며
가볍게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물 올림을 좋게 하기 위해
조심스레 줄기 끝을 조금씩 잘라주었다.
그렇게 키 한 마디가 줄어버렸지만
하루에 한 번씩 말을 건넨다.
잘 자라라고,
천천히라도 괜찮다고.
며칠이 지나자
봉우리들이 하나둘 입을 연다.
먼저 핀 꽃은
뒤따라 올 꽃들을 위해
자리를 조금씩 비켜 둔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자리를 아는 듯
겹치지 않게 피어나는 모습이
괜히 마음을 놓이게 하면서
어깨를 맞대고 풍성하게 피는 모습이
왁자지껄하게 느껴진다.
시든 꽃잎은
떼어낸다는 말도 아프다.
대신 살짝 덜어낸다.
손끝에 힘을 주지 않고
조심히 건져 올리듯.
생긴 그대로 와서
향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이 작은 꽃들이
어느새 집 안을 가득 채운다.
오늘 아침은 비가 내린다.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으며
화병 속 프리지어를 한 번 더 바라본다.
이 비는
아직 다 오지 않은 봄을
조금 더 가까이 끌어내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래서인지
오늘 하루는
조금 더 천천히 시작해도 괜찮을 것 같다.
..
꽃의 눈물
꽃은 위에 있고
봄은 아래에 쌓였다
빛을 흔들던 시간은
잠시 머물다 떠났고
떨어진 것들만이
선명하게
계절을 증명한다
남은 향기가
더 오래 사는 이유를
오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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