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를 냉수에 푹 적시고 싶다

그러하다

by MS

사람의 뇌는 꼬불꼬불하다. 어렸을때는 감정의 근원지가 마음이라고 일컫는 심장이라고 믿었다. 1차원적인 화남, 기쁨, 슬픔은 뇌가 만들어낸 것이라고 받아들였지만 단어를 붙여주지 않은 애매한 감정들이 뇌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믿고싶지 않았다. 내가 느끼는 것은 훨씬 복잡하고 설명할 수 없어서 분이 차는데 이게 고작 뇌의 작용이라니. 나는 불행한 나에 취해있다. 불행한 나는 가련하고 처량해서 누군가 지켜줘야할 것 같다. 마치 스포트라이트를 팍팍 쏘아대는 무대위에 선 것처럼. 항상 나를 가련하다 느끼며 애달파하는 누군가가 상주한다. 오타쿠스러운 음악을 들으며 이런 감성에 젖어있는 것도 잠시, 이런 나를 제삼자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니 얼마나 민망하고 낮 부끄러운 일인가. 그런데 나는 나의 불행한 모습이 아름답다. 취해있다. 굳이 말하면 불행이 편하다기 보다는 불행을 벗어난 나는 무게감이 없기 때문이다. 평범하게 행복한 사람에게는 서사가 잘 주어지지 않는다. 나는 일상이라는 무대에서 나를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다. 내가 있다고 말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의미가 있어지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 대화가 즐거우면 그걸로 된 게 아니다. 최근에 사람간의 관계에서 조금 여유를 찾은 것 같다. 우선, 나에게는 앵기지 않는 너가 다른 이에게 안기면 화가나고 내가 밀린 것 같다는 느낌이 싫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라졌다. 단순한 현상으로 희로애락을 느끼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교류할 수 있을지를 배우고 싶다. 사람을 다수가 아닌 쪽수가 세는 것이 아닌 한명 한명의 세계가 행성처럼 무겁게 쿵 하고 와닿았으면 좋겠다. 마치 그 행성 하나가 100개, 1000개의 행성에게 밀리지 않을 정도로. 그런데 나는 어떻게 내 눈 앞에 있는 타인을 대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것을 그것인 채로 대하고싶다. 나라는 자아를 잠시 뒤로 빼놓고 눈앞에 그것에게 집중하고 싶다.

내 세계에는 나만 살고있다. 저 예쁜 사람은 내가 예뻐졌을 때의 모습이다. 피아노를 잘 치는 저 사람은 내가 피아노를 잘쳤을 때의 모습이다. 내가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식은 나를 사랑하고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곳에 너나 당신이나 상대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나의 살아가는 방식은 나를 비참하고 절망적이게 만든다. 세상은 모두 나고 그래서 나말고 타인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그사람의 세계를 나와 철저히 분리해서 보고싶다. 그래서 그 사람의 행성에 상륙하고 싶다. 상륙해서 구름이 어떤지 모래바람이 어떤지 저 위의 꼬리는 어떤건지 궁금증을 가지며 하나하나 만져보고 냄새 맡아보고 뛰어 보고 싶다. 잠시 내 고향 지구는 잊은채 말이다. 그래도 여전히 내가 살아가는 곳은 지구. 그래도 다른 행성에 있을 때는 그 지구는 잠시 블랙홀 깊은 곳에 숨기고 지퍼로 잠가두고 싶다. 눈에 띄진 않아도 어디로 도망가지 못하게 말이다. 그것이 나이다. 나를 지키면서 상대방을 있는 그래도 받아들이는 것을 원한다. 공룡그림, 나무그림, 이상한 말풍선들을 지우고 아주 깔끔하고 투명한, 창밖에 너머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창문을 보고싶다. 조금도 때묻지 않은 투명하고 얇은 망막으로.

예쁜 사람이 있으면 질투하고 싶어. 그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더 이상 그 사람을 나의 if 버전으로 상상하고 싶지 않아. 남들이 들으면 되게 별거 아닌걸로 머리를 지끈지끈하게 만든다고 넘길 수 있지만 나는 이런 하나하나가 자꾸만 나를 고뇌에 빠지게 만든다. 나는 나만 존재하는 세계에 살기에 누구보다 나의 생각에 흠뻑 젖어버린다. 내 뇌는 검은 생각 찌꺼기들이 주름 사이사이 끼어있는 듯 하다. 머리통을 갈라서 뇌를 두손으로 조심히 꺼내들은 후 맑고 깨끗한 물에 푸욱 10일 정도 담가놓고 싶다. 일명 뇌세탁! 그다음에 뇌를 꺼내면 그 뇌는 물에 푹 불어 질척질척하겠지. 그래도 그렇게 멍청한 뇌를 내 머릿속에 끼워넣으면 사는게 좀 더 편해지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 비가 오는 2025.6.30일 대학교 학생회관 1층 자고있는 동기들 앞에 앉아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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