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흰 민박 안 해요
제주도에 이사 와서 느낀 가장 재미있는 점은 제주에 여행 오는 사람마다 연락을 한다는 거다. 수원에 살 땐 지인이 수원을 왔다고 굳이 전화를 하지 않는데, 제주에 살게 되니 제주에 오는 사람마다 꼭꼭 연락을 한다.
제주가 아닌 다른 지역에서는 굳이 누구네 집을 구경하겠다고 가는 경우는 잘 없다. 새로 집을 사서 집들이한다고 할 때나 가보지. 그런데 유독 제주에 산다고 하면 집을 보겠다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주에 구한 집이 좀 외진 시골에 있는지라 관광 목적으로 제주에 온 분들은 대부분 우리 집을 못 보고 간다. 우리 집을 보려면 다른 관광 일정을 포기하고 정말 우리 집을 보기 위해서 와야 하는데, 그 정도의 목적의식을 지닌 분은 여태껏 몇 명 없었다. ㅎㅎ ( 지난 2년간 딱 4팀이 다녀갔다 )
사실 집이 오래된 집이다 보니 손님맞이할 거실 공간도 없고, 애들이 잔뜩 어질러 놓은 상태일 때가 많아서 누가 집에 찾아오는 건 상당히 부담스럽다. 봄이었으면 마당에서 불 피워 놓고 고기라도 구워 먹을 텐데.. 여름, 가을엔 모기떼가 극성이라 그것도 서로 힘들다.
그래서 요샌 누가 제주 왔다고 전화하면 의례히 잘 놀다 가라는 말 정도나 해준다. 집에 방문하겠다고 하면 넌지시 거절 의사를 밝힌다. 어차피 상대도 울 집 위치를 대충 듣고는 여행 일정과 거리가 맞지 않으니 알아서 포기한다. 다음에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기약 없는 약속을 하면서 말이다.
그.랬.는.데...
효리네 민박이란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난 다음에 진짜 울 집 놀러와도 되냐는 문의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왔다. 재워줄 수 있냐는 전화도 받았고... 아니 정말 이 집엔.. 손님 머물 공간도 애매한데 잠을 잘 공간은 더더욱 없다 ㅜㅜ.... 창고 겸용으로 쓰는 내 작업실에 이불 깔고 자면 되기야 하겠지만.. 이런데서 자려고 제주 여행 오는 건 아니잖는가..(그렇다고 안방을 내주고 우리가 여기서 자기도 애매하고.;; )
대체 왜들 이러나 싶어서 효리네 민박을 시청했다. 재밌더라...;;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사람들이 어떤 기대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 집에서 멍~ 때리고 싶은 거 같다. 그만큼 사회생활에 지쳐있고, 어디선가 힐링을 하고 싶은 거 같다. 근데.. 그게 꼭 우리 집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제주엔 멍 때릴 수 있는 수많은 독채 민박이나 게하들이 바글바글하다. (심지어 우리 집 보다 훨씬 예쁘기까지 하다)
그리고 정말 멍~ 하는 민박을 하고 싶다면 우도에 있는 작은 민박들을 추천한다. 다들 우도는 당일치기로 보고 나가는 곳이라 거기서 민박을 하면 관광객이 다 빠져나가고 정말 적막한 고요를 느낄 수 있다. 아무 할 것도 없고, 강제로 멍~ 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