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진실은 중요하지 않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우리가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러나 곱씹어보면, 그 말은 곧 진실이 승리한다는 것일 뿐,
진실을 알고 있고, 말하는 자가 승리한다는 보장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2025년, 미국은 스위스 시계와 보석 같은 사치품에 대해 39%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스위스 대통령 카린 켈러-서터는 워싱턴을 찾아
미국과의 무역 협력, WTO 규범, 상호 투자 확대 가능성까지 근거를 들어 논리적으로 설명했다.
스위스는 관세를 낮추기 위해 여러 대안을 제시하며 사실과 데이터를 조목조목 전달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통화에서 “우리는 스위스로부터 연간 38억 달러 적자를 보고 있다.”라며
스위스 측 논리를 일축했다.
스위스 대통령의 설명은 국제 규범에 가까운 진실이었지만, 결과는 오히려 관세 39% 강행이었다.
진실을 말한 쪽이 피해를 떠안은 대표적 장면이다.
정치도 다르지 않다.
누군가가 특정인이나 집단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고
명확히 확인되지 않은(아마 일부만 사실) 내용들로 극단적인 나쁜 이미지를 덧씌우며
특정인이나 집단에 대한 사회적 명예와 이미지를 추락시킨다.
진실을 아는 사람들은 그게 누명이자 선동인 걸 알지만
모르는 일반 사람들은 의혹을 진실이라고 믿고 특정인이나 집단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데 적극 동조한다.
특히 '누가' 의혹을 제기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만약 일반 사람들이 많이 신뢰하고, 좋아하는 사람들일수록
그 사람이 제기하는 의혹은 거의 사실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에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일수록 일반 대중을 선동시키기 쉽다.
진실을 밝혀내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리고,
결국 진실은 승리하겠지만
선동한 자들은 이미 이익을 본 후이고, 누명씌워진 자들과 집단의 피해가 온전히 회복되는 것도 아니다.
누가 정말 진실을 알고 있고, 이야기하고 있는지 여부는 훗날 드러난다.
그러나 이미 피해자 또는 집단의 이미지는 추락해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그럴듯한 의혹과 나쁜 이미지’만 남는다.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누명을 쓴 사람과 집단의 평판이 완전히 회복되긴 어렵다.
반면 선동을 한 쪽은 그 사이 정치적 이득을 챙긴다.
뒤늦게 책임을 지더라도 이미 달콤한 열매를 맛본 뒤다.
즉, 힘을 가진 자나 선동하는 자들은 실컷 당장의 달콤한 열매를 먹고 있고, 나중에 댓가를 치룬다.
심지어 장기적 손익을 따지면 진실을 은폐하고,
권력으로 찍어누르거나 선동할 때의 이익이 더 큰 경우가 많다.
진실을 말한 자들이나 의혹 선동 타겟이 된 피해자들은?
억울하게 당장의 피해만 받고 나중에 온전히 회복되지도 않는다.
진실이 알려지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당해야 할지 가늠조차 어렵다.
심지어 진실이 밝혀지지 않고 끝까지 은폐되는 경우들도 많은 점들을 생각해보면,
왜 사람들이 진실을 무시하고 힘으로 찍어내려 하는지,
왜 각종 의혹들을 던져놓고 아니면 말고 식으로 선동하려 하는지 알 수 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현실을 잘 모르는 상사에게 사실을 근거로 설명한다고 해서, 상사가 설득될 거라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진실을 말한 자가 ‘괜한 소리하는 사람’으로 낙인찍혀 앞길이 꼬일 수 있다.
종종 누군가는 자신이 알고 있는 진실에 도취해 시도때도 없이 직언을 내뱉는다.
그러나 그 결과는 대체로 고통이다.
진실이 승리한다는 말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곧 진실을 알고 있고, 진실을 말하고 있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뜻은 아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살벌하다.
진실은 언젠가 드러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진실을 말한 사람들과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끝없는 고통을 겪는다.
때로는 진실이 끝까지 드러나지 못하고 은폐된 채 사라지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자문하게 된다.
왜 사람들은 진실을 무시하고 힘으로 찍어누르려 하는가?
왜 근거 없는 의혹을 던져놓고 ‘아니면 말고’ 식의 선동을 반복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진실이 승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만, 거짓과 선동은 남는 장사라는 선물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진실을 아는 것과 진실을 말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오죽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가 탄생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