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을 자주 잃어버리는 편은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살면서 물건을 잃어버렸던 기억은 거의 없다. 그렇기에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의 기억이 더 선명하게 남아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처음으로 물건을 잃어버렸던 건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물론 그전에 무언가를 잃어버렸던 일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 중학교 3학년 초가을의 어느 날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갔었다. 영화를 다 보고 이제 영화관을 나오려고 하는데 들고 갔던 내 셔츠가 없는 것이었다. 그런데 정말 어디에 셔츠를 놓고 왔는지, 아니면 그냥 걸어가다 흘린 건지 아무리 기억을 되돌려 봐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입고 있을 걸, 왜 그걸 손에 들고 다니다가 잃어버려하고 스스로를 원망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셔츠는 당시 내가 너무 좋아했던 체크무늬 셔츠였다. 부모님께서 생일 선물로 사 주신 폴로 랄프로렌의 셔츠였는데 중학생의 나에게 폴로 랄프로렌은 거의 전부였다. 집에 가는 길은 혹시 부모님께 혼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까지 더해져 발걸음이 무거웠다. 다행히 부모님께서는 뭐 어쩔 수 없지 하며 별말씀은 하지 않으셨다. 너무 속상해하는 내 모습을 보고 아마 그러셨던 것 같다. 비록 부모님께 혼나지는 않고 넘어갔지만 나는 한동안 잃어버린 셔츠 생각에 마음이 쓰렸다.
해외여행에 가서 휴대폰을 잃어버렸던 일은 최악의 기억으로 남아있다.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려고 택시를 타고 휴대폰을 코트 주머니에서 꺼내려는데 휴대폰이 없었다. 혹시나 가방에 넣어놨나 하고 가방 안을 뒤져보았지만 가방 안에도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정말 어디에서 휴대폰을 잃어버렸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일단은 탔던 택시에서 바로 다시 내렸다. 혹시 코트 주머니에서 길에 떨어진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지나왔던 길을 다시 거슬러 가봤지만 내 휴대폰은 보이지 않았다.
휴대폰을, 그것도 한국도 아닌 외국에서 잃어버린 건 그야말로 재앙이었다. 같이 여행을 갔던 친구는 나를 위로해 줬지만 당시의 나는 그대로 공항으로 가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친구의 여행까지 망치고 싶지는 않아 나는 애써 괜찮다고 이야기했지만 그날 이후의 남은 여행은 전혀 즐겁지도 않았고, 어떻게 보냈는지 사실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무언가를 잘 잃어버리지 않는 나에게도 자주 잃어버리는 물건이 있다. 그건 바로 우산이다. 우산은 잃어버리는 과정은 다른 물건과는 조금 다른 것 같다. 물론 잃어버렸다는 걸 바로 알아챌 때도 있지만, 대부분 잃어버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 채 살다가 나중에 돼서야 그 우산 없네, 혹은 그 우산 어디 갔지 하고 깨닫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하다.
해외여행을 가서 기념으로 사 왔던 우산도, 한국에서 마음에 들어 꽤 비싸게 샀던 우산도, 누군가에게 선물 받았던 우산도 지금은 모두 남아있지 않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 우산들이 어디로 갔고 언제 잃어버렸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산을 잃어버렸다는 표현보다 우산이 저절로 사라졌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의외로 마음에 드는 우산을 찾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우산은 항상 사라진다. 최근에 편의점에서 산 비닐우산이 마음에 들어 비가 자주 오는 요즘 잘 쓰고 있다. 과연 이 우산은 사라지지 않고 내년에도 우리 집 우산꽂이에 잘 남아 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