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일에는 중국집에 가야 한다

by SHUN

누군가와 연애를 할 때 기념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날에는 좋은 곳에 가서 식사를 하고 싶어진다. 좋은 곳에 대한 의미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평소에 가보고 싶었지만 가격대가 있어 큰맘 먹고 가는 곳일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처음 만났던 장소 거나 평소에 함께 즐겨 가던 곳일 수도 있다.

그래도 보통은 분위기가 좋은 곳에 가고 싶어진다. 그래서 기념일에는 이탈리안이나 프렌치 레스토랑을 선호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학생 때 당시 사귀었던 여자 친구와 기념일이나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우리는 어디에 가서 밥 먹을까 하고 함께 의견을 나누었다. 그럴 때 보통 여자 친구는 이탈리안이나 프렌치 레스토랑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어릴 때 나는 약간은 유별난 면이 있었다. 일종의 허세였을 수도 있다. 나의 대답은 기념일에 이탈리안이나 프렌치 레스토랑을 가는 것은 촌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런 곳은 평소에 캐주얼하게 가는 거고 기념일 같은 날은 중국집에 가는 게 멋있는 거야라고 그야말로 무논리의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늘어놓았다. 논리는 없었지만 그 당시는 정말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다. 기념일이나 특별한 날에 서양식 레스토랑에 가는 건 어쩐지 진부하고 뻔하다는 게 내 주장이었다. 오히려 중국집에 가서 샴페인이나 와인 대신 고량주를 마시는 게 쿨하다고 이야기했었다. 사실 고량주 같은 독주는 잘 마시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쿨한 게 뭔지 지금도 정의할 수 없지만 그때는 나에게 기념일에는 중국집에 가는 게 쿨한 일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마지막에는 꼭 짜장면을 먹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연애 초기에는 상대방의 대부분의 모습이 좋게 보이지 않는가? 여자 친구는 그렇게 이야기하는 나를 약간은 어이없어하면서도 내 의견에 따라주었다. 평소에는 대부분 여자 친구가 가고 싶다는 곳에 갔기에 큰 불만이 없었을 수도 있다. 심지어 짜장면을 먹는 나를 보며 잘 먹는다고 좋아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특별한 날마다 중국집에 가자는 나를 보며 여자 친구도 조금은 지쳤을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은 어느 날 여자 친구가 크리스마스 때 어디 가서 밥 먹을까 하고 물어왔다. 내 대답은 역시 중국집이었다. 여자 친구는 또?라는 표정과 함께 초등학생이냐? 맨날 중국집만 가자고 하게라고 살짝 짜증을 냈다. 초등학생들이 중국음식을 좋아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말을 했었다. 그때는 결국 여자 친구의 의견을 따라 남산 근처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했다.

시간이 흐르기는 했지만 나에겐 여전히 그 쿨병(?)이 남아있는 듯하다. 요즘도 나는 가끔 특별한 날에 서양식 레스토랑에 가는 건 별로라고 이야기한다. 사실 아무 근거도 없다. 이탈리안이나 프렌치를 싫어하는 것 또한 아니다. 그럼에도 평소에는 잘 가지도 않는 중국집을 기념일이나 누군가의 생일에는 가고 싶어지는 이상한 버릇이 아직도 남아있다.


6월에 가족 중 한 명의 생일이 있다. 생일 주인공이 가고 싶은 곳에 가서 식사를 하겠지만 만약 나에게 선택권이 주어진다면 나는 이번에도 중국집에 가자고 그게 쿨한 거라고 이야기할 것 같다. 그 이유는 나도 정말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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