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좋아했다. 과거형인 이유는 현재는 이런저런 이유로 커피를 마시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당시는 항상 잠이 부족했고 커피를 마시면 조금이라도 덜 졸리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편의점에서 파는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사실 크게 효과는 없었다. 그럼에도 편의점 커피를 꽤 자주 마셨던 이유는 그저 그 달콤한 맛이 좋아서였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오히려 커피를 거의 마시지 않았다. 특히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친구를 보며 왜 그렇게 맛없고 쓰기만 한 걸 돈 주고 사 마시냐고 이야기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카페에 갔을 때 선택하는 메뉴는 언제나 달콤한 종류였다. 내가 제일 좋아했던 메뉴는 오레오셰이크였다.
어느 날 관심이 있던 친구와 점심 약속이 생겼다. 나는 잔뜩 멋을 부리고 설레는 마음으로 약속 장소로 향했다. 우리는 함께 점심을 먹고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카페로 향했다. 나는 언제나처럼 오레오셰이크를 주문했고 그녀는 에스프레소와 다른 음료 한잔을 더 주문했다. 우선 에스프레소를 한 번에 다 마신 그녀는 오레오셰이크를 마시고 있는 나를 보며 귀엽네라고 한 마디 던졌다. 귀엽다는 말이 나쁠 것은 없지만 그 순간만큼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 친구한테는 귀엽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멋있게 보이고 싶을 뿐이었다. 우리는 그 이후에도 몇 번 데이트를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우리가 잘 안 된 이유에 오레오셰이크도 약간은 영향을 주었다고 내 멋대로 생각했다. 그때 나도 에스프레소를 마셨다면 우리의 결말은 좀 달라졌을까?
내가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한 건 24살 때부터이다. 당시 친하게 지냈던 형이 한 명 있었다. 정확한 나이를 기억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와 나이 차가 꽤 나는 편이었다. 그 형은 카페에 갈 때마다 아메리카노를 주문해서 마셨다. 그런데 그 모습이 굉장히 멋있어 보였다. 지금도 그 이유를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어쨌든 굉장히 멋있고 세련되게 보였다. 심지어 저런 모습이 진짜 어른의 모습인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 형을 따라서 나도 이제부터는 아메리카노를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날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나를 보고 그 형은 웬일로 아메리카노를 마시냐고 물었다. 저도 원래 아메리카노 좋아해요라고 대답했지만 아메리카노는 여전히 내 입에 많이 썼다. 그래도 나는 여유로운 척을 하며 아메리카노를 마셨다. 그렇게 고통(?)을 참아내며 아메리카노를 마시다 보니 그 쓴맛에도 적응이 되었는지 점점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내 멋대로 조금은 더 어른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26살,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와 심하게 싸운 날이었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심하게 싸웠는지 지금은 기억도 나지 않지만 우리는 다시는 안 볼 사람들처럼 감정이 격해져 있었다. 그대로 집에 갈 기분도 아니었던 나는 혼자 광화문에 있는 카페에 들어갔다. 그 카페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곳이기도 했고 여자 친구와도 자주 함께 갔던 곳이었다. 아메리카노를 시켜 놓고는 마시지도 않고 그냥 시간만 보내고 있었다. 커피는 다 식어서 온기가 거의 없는 상태였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버리고 왔겠지만 그 날 만큼은 달랐다. 나는 다 식어 빠진 아메리카노를 그대로 다 들이켰다. 이상하게도 전혀 쓰지 않았다. 그리고 예감했다. 이제 이 카페에 함께 올 일도 더 이상 없을 거라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