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에게 물으면 단 10초면 끝날 것을, 왜 이 회의는 2시간이나 걸릴까?”
어느 대기업 전략임원이 회의 중 던진 혼잣말이다. 실무자들은 다양한 의견과 자료를 공유하지만, 논점은 자꾸 흐려지고 결론은 좀처럼 정리되지 않는다. 그 순간 그 리더는 속으로 되묻는다.
“AI와 나누는 대화는 훨씬 빠르고 명료한데, 굳이 사람들과 이 느린 회의를 해야 하는 이유는 뭘까?”
오늘날 많은 리더들이 비슷한 고민을 한다. 정보는 AI가 더 빨리 모으고, 논리는 AI가 더 잘 정리해 주며, 감정 없는 피드백까지 제공된다. 그렇다면 회의에 AI를 참석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식 아닐까? 리더가 AI의 대답을 참고해 결정하고, 그 결과를 사람들에게 지시하는 식의 ‘신속한 의사결정 체계’는 논리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실제로 일부 기업은 이미 AI를 회의에 ‘앉히는’ 실험을 하고 있다. Amazon은 회의 중 Alexa 기반 AI가 관련 자료를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Deloitte는 GPT 기반의 전략 보조 툴을 통해 실시간 대안 제시를 지원한다. 일부 스타트업은 아예 AI가 사전에 전략 초안을 작성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검토·보완하는 회의 구조로 바꾸기도 했다.
그러나 AI 중심 회의가 일상화된다면, 조직은 질문을 멈추게 될 위험에 처한다.
AI의 가장 큰 장점은 ‘빠르고 정확한 대답’이지만, 조직을 움직이는 힘은 ‘의미 있는 질문’에서 비롯된다. 회의란 결론을 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리더의 질문에 다양한 해석이 붙고, 그 해석 속에서 조직의 방향성과 관점이 풍성해지는 공간이다. AI가 아무리 완벽하게 분석해도, 조직의 맥락·정서·관계·기회비용은 사람만이 읽어낼 수 있다.
결국, 질문을 설계하고, 질문이 질문을 낳게 만드는 구조가 사라지면 조직은 '의사결정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락할 수 있다. 이는 단기적 효율성은 높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론 문제 회피와 책임 전가, 내부 동기 저하로 이어진다.
실제로 한 유통기업에서는 AI의 예측 결과만 보고 신제품 전략을 세웠지만, 정작 내부 조직의 실행력이 그 논리를 따라가지 못해 오히려 성과가 하락했다. 리더가 AI의 ‘정답’에만 집중하고, 조직 내부의 ‘질문’을 놓친 결과였다.
그렇다면 AI는 회의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해야 할까? 정답을 말하는 ‘결정권자’가 아니라, 생각을 유도하는 ‘자극자’로서의 역할이 이상적이다.
예컨대 한 소비재 기업의 미래전략팀은 회의 전 AI에게 “이 전략의 사각지대는 어디인가?”라고 질문하고, 그 분석을 회의 말미에 공유한다. 회의 중간에 “그럼 AI는 뭐라고 했지?”라는 순간이 오면, 사람들은 그 분석을 계기로 논의를 확장하거나, 오히려 반론을 제기하며 더 풍부한 시각을 나누게 된다.
이때 AI는 방향이 아니라, 방향을 열어주는 ‘렌즈’가 된다.
AI와의 대화는 리더에게도 새로운 훈련이 된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AI가 의미 있는 답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그 대답을 회의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리더는 더 이상 ‘질문하는 사람’이 아니라 ‘질문을 설계하는 사람’으로 변화한다.
중요한 건 AI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AI를 사람들의 사유에 연결시켜 주는 브리지를 놓는 것이다.
AI가 회의에 들어오는 순간, 리더십 구조 역시 조정된다. 과거의 리더는 방향을 제시하고, 질문을 주도하고, 결정을 내리는 존재였다. 하지만 AI가 대답의 한 축을 맡게 되면, 리더는 더 근본적인 역할로 돌아가야 한다.
“이 질문은 AI에게 맡길 것인가, 사람에게 맡길 것인가?”
“이 대답을 내가 책임질 수 있는가?”
AI의 도입은 정보가 아니라 책임의 구조를 재편한다.
이제 회의의 핵심은 ‘정확한 대답을 누가 내놓았는가’가 아니라, ‘어떤 질문이 조직을 앞으로 이끌어가는가’로 이동한다. 그 변화 속에서 리더는 다시금 ‘질문의 책임자’로 돌아와야 한다.
빠르게 정리된 정보와, 깊게 축적된 경험, 그리고 느리지만 의미 있는 해석이 교차하는 자리. 그 자리에 있는 리더만이 AI 시대에도 진정한 전략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회의에 AI를 앉히는 것은 기술의 진보가 아니라, 조직문화와 리더십 구조의 진화다. AI가 제공하는 건 정보일 뿐이고, 전략의 방향성과 의미는 여전히 사람의 손에 달려 있다. 답은 AI가 줄 수 있지만, 질문은 리더가 짓는다. 그리고 그 질문이 곧, 조직이 나아갈 방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