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시험 같던 응급실.
내과나 외과 인턴이 매일 꽤 많은 양의 ‘빡빡이 숙제’를 해야 하는 느낌이라면, 응급실은 매일 시험을 보는 느낌이었다.
어떤 날은 시험이 평이하고 무난하게 끝나는 날도 있지만,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이리저리 치이는 날도 있었다.
매일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응급실.
그 안에서 형성되는 전우애 같은 동기들과의 정.
1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 생각해도, 그때 우리 병원의 응급실은 참 체계가 없었다.
응급의학과 교수는 외과계열, 내과계열 각 1~2명씩 있었는데, 골방에 들어가서는 하는 일이라고는 딱히 없었다.
아니, 그냥 그렇게 골방에 들어가 있는 것이 오히려 응급실이 돌아가는 데 더 효율적이었다.
간혹 지나가며 보호자들에게 엉뚱한 소리를 해놓기라도 하면, 그 뒷수습이 더 힘들었다.
교수는 그러했고, 레지던트들은 연차별로 2~3명 정도씩 있었는데, 매일 밤 다른 병원에서 알바를 하고,
낮에는 본원 당직실에 와서 누워 있는 게 일이었다.
그렇다면 응급실은 누가 봤을까?
응급실에 상주하는 내과 2년차 레지던트 한 명,
그리고 마소처럼 일하는 5~6명의 인턴들.
주간에는 해당 월에 고정된 내과 레지던트가 상주했고,
밤에는 내과 응급실 당직 레지던트가 매일 바뀌었다.
4월 응급실 인턴 때, 내가 본 응급실의 모습은
“아, 이것이 지옥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복도에 빽빽하게 누워 있는 환자들.
그럼에도 계속 밀려드는 구급차.
한쪽 구석에서는 CPR,
또 다른 쪽 구석에서는 신경과 레지던트의 고성.
신경과 1년차와 내과 2년차 사이에서 벌어지는
환자를 떠넘기기 위한 치열한 신경전.
응급 판독을 위해 영상의학과로 내려간 인턴,
잠에 취한 성형외과 1년차와, 그를 어시스트하러 끌려간 또 다른 인턴.
환자들의 고통스러운 신음과 괴성, 보호자들의 울음과 분노.
그와 선명하게 대비되는, 커피 한 잔을 마시는 CT실 아저씨와 처자고 있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그리고 최악의 기분은—
오프 다음 날 돌아와 보니, 내 담당 환자가 아직도 응급실에 누워 있는 그 막막함이었다.
아무리 욕을 먹더라도, 해당 과로 넘기기만 하면 되는 걸
그 넘기기가 왜 그리 어려웠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가 지금보다 좋았던 점은 있었다.
각자의 위치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고, 응급실에서 환자를 내몰지 않았고.
내가 무언가 실수를 하더라도, 위에서 내과나 신경외과 형들이 커버쳐 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