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
2020년, 우리 가족은 중국 주재원에 신청을 했다.
많은 고민 끝에 결정을 했고,
계획대로 천천히 준비가 이뤄졌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시작됐다.
하필 코로나가 시작된 나라로 가야 하는 믿기 힘든 상황.
하지만 이미 결정했고, 번복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알 수 없는 불안함 속에서 신랑은 먼저 중국으로 떠났다.
나와 아이는 그동안 이삿짐 정리를 하고,
이삿짐을 보내고,
세 달 동안 친정집에서 고군분투가 시작됐다.
코로나로 해외를 오고 갈 수 없는 상황이라
다음 주에는 갈 수 있을까,
다음 달에는 갈 수 있을까,
기약 없는 기다림이 계속되었다.
그리고 2021년, 드디어 전세기가 마련되었고
한 손에는 이민가방과 다른 손에는 아이를 붙들고 비행기에 올랐다.
외국살이에 설렘 틈도 없이,
우리는 곧바로 호텔로 격리되었다.
낯선 땅,
낯선 사람들,
나와 아이만 덩그러니.
‘나는 엄마잖아, 할 수 있어.’
4살짜리 아이에게는 내가 전부였으니까.
그러니 나는 괜찮아야 한다.
버텨내야 했다.
그렇게 중국에서의 4년이 시작되었다.
그 시기, 세상은 멈춘 듯 보였지만
육아는 멈추지 않았다.
밥을 먹이고, 놀아주고, 울음을 달래는 일은
전염병보다 먼저였고, 더 현실적이었다.
어디서도 도망칠 수 없었고,
도움도, 쉼도 없었다.
아이의 체온 하나, 기침 한 번에 심장이 조여왔고,
그것은 온전히 내 몫이었다.
한 번은 아이가 장난을 치다가
실수로 내 입술을 손으로 쳤는데
안 그래도 구내염으로 퉁퉁 부어있던 게
터지고 찢어져버렸다.
그 순간, 터진 입술과 함께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가슴속이 이상하리만큼 뜨거웠다.
당혹스럽고 미안함이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던 아이를 끌어안고,
그냥 같이 울어버렸다.
나도 울고 싶었나 보다.
엄마는, 멈추지 않는 사람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날에도,
무력감에 몸이 얼어붙는 순간에도
아이 앞에서는 멈출 수 없었다.
한국에서는 간단했을 일들이
중국에서는 너무도 어려웠다.
매번 번역기를 돌리고,
더듬더듬 아는 단어를 내뱉고,
손짓, 발짓으로 하고 싶은 말을 전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멈춘다.’
나는 그렇게 매일 움직였고,
그게 곧 나의 정신을 붙잡는 방법이었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알았던 것 같다.
그 작은 아이도
자신만의 속도로, 나를 따라와줬다.
그렇게 나는 고립 속에서 아이를 지켰고,
아이는 나를 지켜줬다.
이 글은 5편 완결 에세이 시리즈
<일을 멈춘 순간, 삶이 시작됐다> 입니다.
1. 일을 그만두고 나를 바라본 하루
2. 가정주부로 사는 건 쉬운 줄 알았다
3. 엄마는 쓰러질 수 없다
4. 나를 채우는 연습
5. 안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