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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 쓰지 않으면 놓치게 되는 것들 )

by Amberin

마음을 놓치지 않기 위해


한때는 예쁜 일기장을 사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음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다정한 문구가 적힌 표지, 부드럽게 넘어가는 종이,

글을 쓸 때 펜의 사각거리는 그 감촉이 좋았다.


“매일매일 써야지!”

그 다짐이 무색하게

일기장은 점점 빈 페이지로 가득해졌다.


나중엔 언제 샀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일기장이

서랍 곳곳에서 발견되곤 했다.


새해가 될 때마다 또 새로운 일기장을 사고,

또다시 같은 다짐을 써넣지만

결국 잊히고 말았다.


어느 해에는

아예 일기장을 단 한 번도 일기장을 펼쳐보지 못한 채

한 해를 보내기도 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내가 지난 1년 동안 무얼 느끼고, 어떤 하루를 살았지?”


아무리 떠올려 보려 해도 흐릿했다.

그저 스쳐 지나간 계절들,

언젠가 웃었고, 언젠가 울었던 기억들만 어렴풋이 남았다.


그게 언제였는지, 왜였는지 도무지 붙잡히지 않았다.


그때 깨달았다.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면, 그 하루는 나한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구나.’


삶은 계속되고 있지만,

내가 살았다는 증거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그때부터였다.

이렇게 하루를 무심히 지나쳐선 안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다시 다이어리를 샀다.

특별한 문장이 아니어도 좋으니,

짧게라도 매일의 일정을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조차 매일 쓴다는 건 쉽지 않았다.


1월, 2월 몇 장 채우다 문득 정신을 차리면

어느새 7월이 지나 있었고,

그제야 다짐하며 펜을 들지만

결국 한 해를 채 마무리하지 못한 다이어리가 쌓여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생각했다.

'할 일만 적는 것이 아니라 내 감정도 함께 써보면 어떨까?'


아침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마음에 머무는 감정을 짧게 적기 시작했다.


단 한 줄이라도,

내 기분을 마주하고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이 생기자

조금씩 쓰는 것에 익숙해졌고,

점점 그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물론, 가끔은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은 날도 많았다.


그럴 땐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진심을 꺼내어 써보았다.

그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그와의 관계 속에서 내가 얼마나 조심스럽고, 애틋하며,

때론 어떤 서운함과 기대를 품고 있었는지를

글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관계 속 오해가 풀리기도 했고,

묵은 감정들이 조금씩 정리되었다.


마치 내 안에 조용히 머물던 감정들이

글을 통해 나와 마주하며,

나를 유연하고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그렇게 글은 내 안에 조용히 들어와

숨어 있던 감정들을 하나씩 꺼내주는 작은 창이 되었다.


쓰는 일은 여전히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어느 날은 무심히 적은 한 줄이

내 하루를 붙잡아주기도 했고,


흘려보내려던 감정이 글로 남아

나를 위로해 주기도 했다.


이제는 아침에 떠오르는 감정들을

짧게라도 적지 않으면

하루가 어딘가 허전하다.


내가 지금 어떤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는지,

무엇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고 싶은 것인지,...

쓰는 시간은 나를 알아차리는 작은 명상되었다.


거창한 글쓰기가 아니라

하루를 놓치지 않고 ‘살아냈다’고 말할 수 있게 해주는

나만의 방식이다.


그렇게 쌓인 하루들이

조용히 나를 단단하게 만들어 주었다.


쓰는 일은 결국,

나를 잃지 않으려는 '작은 의지' 다.


그 의지가 모여

나를 단단히 지켜주는 문장이 되길 바란다.


누구에게 보여주지 않아도 좋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나를 잊지 않기 위해,

내 마음을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조금은 어설프고 느리더라도,

나는 오늘을 남기고 있다.


여유로운 아침, 조금 일찍 눈을 떴다.

창밖에서 스며든 햇살이 천천히 내 방을 채우는 걸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옆에 두고

짧게라도 한 줄, 마음의 숨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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