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한낮의 햇빛은 여전히 여름의 온기를 품고 있지만,
그 속에 서늘한 결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바람은 부드럽게 옷깃을 스치며 계절 변화를 속삭이고,
공기는 어느새 가을 향기로 물들고 있다.
여름의 뜨거움이 한발 물러서고,
가을이 살짝 고개를 내민 오후.
그런 날이면 책을 펼치고 싶어진다.
창문을 반쯤 열어두면 바람이 가만히 집 안으로 스며들고,
책상 위로 떨어지는 그림자가 길어졌다 짧아졌다 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바람이 한 장씩 살짝 넘겨주는 듯,
서늘한 공기와 활자의 온도가 묘하게 어울리기도 한다.
독서는 내 안의 속도를 계절처럼 바꾼다.
빠르게 달리던 하루의 호흡이,
가을 문턱의 오후처럼 한결 느리고 차분해진다.
단어 하나가 노랗게 물든 낙엽처럼 사뿐히 내려앉고,
그 문장이 오래 마음에 머물러 잔향을 남긴다.
책 속의 풍경과 계절은 종종 겹쳐진다.
어느 장면 속 숲길에서 가을의 냄새를 맡기도 하고,
인물의 마음속에 번지는 고요함에서
해 질 무렵의 황금빛을 느낄 수 있다.
그 시간, 책은 단순한 글이 아니라
계절을 다르게 느끼게 하는 창이 된다.
가을은 생각이 깊어지는 계절이다.
그리고 독서는 그 생각에 방향을 준다.
책 속에서 만난 질문들은
내 안에 오래 묻혀 있던 감정들을 불러내고,
당연하게 여겼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한다.
그리고 나를 만나는 시간을 만들어 준다.
마치 창문을 더 크게 열어
더 많은 빛과 바람을 들이는 것처럼.
가을 저녁, 창가에 앉아 읽는 책은
하루 중 가장 고요하고 풍요로운 순간을 만들어 준다.
창밖에서 들려오는 바람 소리,
한 장씩 사각거리는 종이 소리,
그리고 페이지 사이로 스며드는 계절의 향기.
그 모든 것이 나를 책 속 세계로 깊이 데려간다.
귀뚜라미가 울기 시작했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에
가을 향이 묻어오기 시작한다.
나는 다시 책을 펼치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서늘한 바람이 책장을 넘기는 그 순간을,...
나의 깊은 곳에 숨어 있던 감정을 꺼내는 순간을,...
그리고,
나를 다시 만날 수 있는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