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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May 02. 2020

화로대에 불을 피워보고 싶어서 시작한 캠핑

[언제나 초조한 사람의 캠핑] 나는 어쩌다 캠핑을 시작했나

대한민국의 캠핑인구는 약 5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웬만한 흥행 영화의 스코어인데, 내가 그중에 들어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 '캠핑'은 너무 피곤해 보이는 취미였다. 어딘가로 운전해서 가야하고, 텐트를 쳐야하고, 직접 음식을 해먹어야 하고, 침대에서 잠을 자지도 못하고, 화장실도 멀리 써야하는 저런 걸 뭐가 좋다고 하는 건지. 나의 유일한 아웃도어 취미인 '사회인 야구'는 '캠핑'에 비하면 모든 게 수월했다. 하루에 약 3, 4시간을 써서 서울 근교의 야구장에서 놀 수 있다. 그걸로 끝이다. 나는 공기 좋은 곳으로 떠나고 싶을 때, 강촌의 어느 펜션으로 가곤 했다. 여기서는 침대, 가스렌지, TV, 샤워실이 딸린 원룸형 펜션이 하루에 약 3만 5천원이다. 평일에 가면 2만원 대에 쓸 수 있다. 나에게 캠핑을 해야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친구 집에서 술을 마시며 유튜브를 보다가 ‘캠핑한끼’라는 채널을 알게 됐다. 이 크리에이터는 삼겹살을 굽는 영상에서 먼저 냇가에 소주병을 꽂아놓았다. 이어 작은 화로대에 불을 피우고 삼겹살을 구워서 멜젓에 찍어 먹었다. 그때 마음이 동했다. 나도 저 화로대에 불을 피워보고 싶다! 고기까지는 굽지 않더라도, 불을 피워서 계속 보고 싶다! 하지만 자기 마당을 갖지 않은 이상, 이 도시에서 장작으로 불을 피울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캠핑장'이었다. 


'캠핑장'에서 화로대를 놓고 불을 피워보자! 이 결심을 했을 때만 해도 내가 캠핑을 본격적으로 하리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나는 근사한 '불멍'을 상상했다. 불을 피우는 건 아무래도 낮보다는 밤에 하는 게 더 좋을 테고, 이왕 불을 피웠는데 고기를 구울 테고, 그러면 술도 마실 텐데, 집에는 어떻게 돌아오지? 결국 그곳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에게는 텐트가 필요했다. 이때부터 고민이 시작됐다. 나는 불을 피워보고 싶었을 뿐이지만, 텐트를 산다는 건 캠핑을 시작한다는 의미다. 돈을 들여 텐트를 사놓고, 방치하면 그건 돈이 아까운 짓이니까. 그런데 캠핑을 해도 될까? 캠핑을 시작하면 분명 새로운 장비들을 사고 싶어 질 테고, 그만큼 돈을 쓰게 될 텐데. 그때 상갓집에서 만난 학교 선배가 말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봐." 어느새 나는 마흔이 넘은 사람이었다. 나중에 여유가 있을 때 하자고 계획할 수 있는 나이가 아니었다. "더 나이 들기 전에 해봐"라는 말에는 이미 나이가 든 선배의 슬픔이 담겨있었지만, 나에게는 용기가 되었다. 


저렴한 텐트 하나를 주문했다. 텐트를 주문하는 순간, 덫에 걸렸다. 밤에는 텐트에서 시간을 보내야 하니, 텐트 조명이 필요하다. 하필 캠핑을 결심한 게 겨울이어서 텐트에서 자려면 두꺼운 침낭이 필요했다. 텐트 안에서 술을 마실 수 있는 작은 테이블도 있어야 했다. 아, 화로대에 불을 피울 때 계속 서서 있을 수는 없으니까, 의자가 필요하겠네. 그런데 집에 있는 시디즈 의자를 차에 넣어 가져 갈 수는 없으니 캠핑 의자도 있어야겠네. 그렇게 하나씩 주문하다 보니 택배박스가 쌓였다. 첫 캠핑을 위한 마지막 박스는 하루 전날 도착했다. 화로대에 불을 피우려면 장작이 있어야 한다. 요즘에는 장작도 쿠팡에 주문하면 로켓 배송이 된다. 그렇게 첫 캠핑을 했다. 함께 간 친구는 나의 준비와 계획이 만들어낸 안락한 캠핑에 놀라워했다. 그런데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첫 캠핑에서 태어나 처음으로 설치해본 텐트. 모양도 각도 안 나온다.

화로대에 불을 피워보려고 시작했지만, 나에게는 캠핑장비가 생겼다. 돈을 쓴 이상, 나는 계속 캠핑을 다닐 수밖에 없는 운명에 놓인 것이다.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의 캠핑장을 알아보는 한편, 유튜브에 올라온 수많은 캠퍼들의 영상을 보았고, 거기서 다른 캠퍼들이 쓰는 장비들을 보았다. 각종 캠핑 집기를 걸어놓는 인디언 행거란 게 있다. 이소가스에 연결해 빛을 내게 하는 캠핑용 호롱불도 있다. 캠핑에 꼭 필요한 건 아닌데, #감성캠핑이란 태그와 함께 필수품이 되어버린 장비들이다. 친구 하나는 캠핑을 할 거면 파타고니아 재킷을 사라고 했고, 또 어떤 친구는 진짜 캠핑은 오토캠핑이 아니라 백패킹이라며 60만 원대의 백패킹 가방을 제안했다. 그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잠시 마음이 동한 나는 수많은 장비들을 보고 나니, 그 장비들을 사는 것보다 보관하는 게 더 큰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러다가 캠핑장비 싣겠다고 차까지 SUV로 바꾸겠네. 아니, 나중에는 더 큰집까지 사겠어. 덕질의 끝은 집이라고 하니까. 


2020년 1월 28일, 파주에서 경험한 첫 캠핑 후, 나는 두 번째 캠핑을 간절히 원했다. 두 번째 캠핑 후에는 세 번째 캠핑을 원했다. 그만큼 소소한 장비들이 또 늘어났다. 대부분의 장비를 자동차 트렁크에 테트리스하듯 끼워 넣었다. 그래도 남은 장비들의 자리를 위해 옷장을 뒤져 낡은 옷 한 박스를 버렸다. 제 자리를 찾은 장비들을 볼 때마다 뿌듯하다. 첫 캠핑 후, 여섯 번의 캠핑을 다녀왔고(사회적 거리두기를 위해 휴가를 내고 평일에 다녀온 경우가 많았다.), 다가오는 2020년 5월에는 캠핑장 3곳을 예약했다. 올해 여름휴가는 전국 캠핑장 일주로 보낼 계획이고, 나의 쿠팡 장바구니에는 언젠가는 꼭 결제하고 싶은 72만 3000원 상당의 캠핑 장비가 쌓여있다. 2020년의 나는 그렇게 매일 결제하고 상환하며 캠핑을 하는 중이다. 그래서 페이스북과 브런치의 자기소개에도 '캠퍼'를 추가했다. 사람은 자신이 돈을 버는 일보다, 돈을 쓰는 방향으로 더 정확하게 정의되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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