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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May 02. 2020

캠핑 가면 뭘 하고 있나요?

[언제나 초조한 사람의 캠핑] 음주 밖에 할 게 없는 캠핑의 딜레마

캠핑을 가면 먹고 잔다. 물론 어디까지나 큰 카테고리로 분류하면 그렇다는 거고, 각론으로 들어가면 꽤 할 일이 많다. 텐트를 피칭하고 맥주 마시기, 고기를 구워서 소주 마시기, 화로대에 불을 피워놓고 불멍을 하면서 또 술 마시기. 사실 막상 캠핑을 갔더니, 술 마시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친구와 함께 갔던 첫 캠핑이 그나마 다채로웠다. 처음 산 텐트를 처음 설치해보는 거라, 텐트 피칭에만 1시간가량이 걸렸다. 배고파서 라면을 끓여 먹었다. 캠핑장 주변을 산책했다. 겨울의 평일에 간 캠핑장이라 사람이 없어서, 친구와 캐치볼을 했다.(내 차 트렁크에는 야구장비도 있다.) 고기를 굽고 찌개를 끓여서 저녁식사를 하면서 술을 마셨다. 불멍을 하면서 술을 마셨다. 캠핑장의 매너 타임이 찾아왔을 때는 텐트에 들어가 노트북으로 '무한도전'을 틀어놓고 막걸리를 마셨다. 취해서 잠들었다. 


친구와 함께 간 캠핑이라서 그나마 캐치볼을 했지만, 혼자 하는 캠핑은 더더욱 술 마시는 것 밖에 할 일이 없었다. 텐트를 치고 나면 맥주, 저녁 먹을 때는 소주, 잠들기 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예능프로그램을 볼 때는 양주 혹은 막걸리. 술에 취해 잠들었고, 속이 부대껴서 일어났다.  그런 캠핑이 몇 번 반복되고 나니 자괴감이 들었다. 공기 좋고 풍경 좋은 곳에 가서 고작 할 일이 술 마시는 것뿐이라니.  “그런데 캠핑 가서 술 안 마시면 뭐할 건데?”주위 사람들은 나의 자괴감에 이렇게 말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돈과 시간을 들여 현실에서 벗어난 곳에 가서 현실에서도 하는 음주를 또 하는 건, 너무 쓸데없는 일 같았다. 나는 음주 외에 캠핑장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들을 상상했다. 어떤 사람은 책을 읽고, 어떤 사람은 잠을 잔다. '건프라'를 조립한다는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일단 '산책'을 해보기로 했다. 하지만 산책만으로 시간이 다 가지는 않는다. '닌텐도 스위치'를 사서 '동물의 숲'을 해보는 건 어떨까? 힐링의 장소에서 힐링의 게임을 하면 힐링이 두 배가 될 것 같았지만, '닌텐도 스위치'의 가격이 두 배로 오른 시대였다. 


결국 내가 해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캠핑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려면 일단 옷을 따뜻하게 입어야 한다. 겨울산으로 백패킹을 가는 사람들이 입는 '다운부티' 까지는 아니어도,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자신의 사이트에서 풍경이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의자를 놓고, 머리까지 의자에 기댄 후 가만히 있는다. 그러다 졸리면 자고, 깨면 또 가만히 있고, 그러다가 배가 고프면 식사를 하면 된다. 집에서는 그렇게 있기가 어려운데, 캠핑장에서는 그게 된다. 그래 봤자 1시간 정도인데, 나로서는 10시간 잔 것보다 개운한 기분이다.  그렇게 있다 보면 모든 게 귀찮아진다. 화로대도 있고, 장작도 있지만, 불 피우는 게 귀찮아진다. 요리를 할 수 있는 음식물도 가져왔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사실 캠핑장에서는 배가 고프지 않아도, ‘여기까지 왔는데’란 의무감에 무언가를 해서 먹을 때가 있다. 모든 게 귀찮아지면, 배고플 때 찾아먹게 된다. 


현실에서는 많은 일에 귀찮음을 느끼지만, 귀찮다고 안 할 수가 없다. 밀린 설거지도 해야 하고, 청소도 해야 하고, 빨래도 해야 한다. 일을 할 때도 각종 귀찮은 잡무들이 많은데, ‘아이고 귀찮아’하면서 또 그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꼭 지금 당장 해야 하는 일이 아닌데도, 그런 관성에 의해 빨리 해야 할 것 같은 강박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캠핑장에서는 진정한 ‘귀찮음’을 체험할 수 있다. 귀찮아서 정말 아무것도 안 할 수 있는 귀찮음. 여기서는 씻지 않고 그냥 잔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지 않는다. 그게 창피하지도 않다. 다른 사람들도 웬만하면 안 씻고 잔다. 그러고 보면 진짜 이상한 짓을 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 그 먼 거리를 운전해서 캠핑장을 찾아가 텐트와 타프를 치다니. 여행의 설렘은 있지만, 여행의 흥분은 없는 그런 여행이라고 할까. 나이 마흔의 남자에게는 딱 어울리는 형태의 여행일 수도 있다. 


P.S 술을 많이 안 마시려고, 요즘에는 캠핑 영상을 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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