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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May 16. 2020

캠핑장 주인들은 왜 대부분 친절한가?

[언제나 초초한 사람의 캠핑] 먼저 도와주겠다고 다가오는 친절함. 

아직 많은 캠핑장을 다니지는 않았지만, 같은 캠핑장을 가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본 캠핑장을 찾아가는 편이다. 가기 전에는 네이버 같은 곳에서 후기들을 보게 되는데, 하나같이 나오는 이야기들이 '캠지기님이 정말 친절하세요'다. 뭐, 그냥 써놓는 내용이겠지 싶었지만, 막상 실제로 만난 캠핑장의 주인들은 정말 친절했다. 그 친절함이 흥미로울 정도로 친절했다. 


사실 일상에서 우리는 꽤 친절한 세계를 살고 있다. 직장이나, 거래처 등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하지 않을 뿐이다. 반대로 내가 '갑'의 위치에 있는 경우의 공간에서는 친절함으로 가득하다. 식당, 술집, 편의점, 은행, 서점, 대형마트 등등 내가 돈을 쓰는 곳에서는 모두 나에게 친절하게 대한다.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더 필요한 건 없으세요?", "카드는 여기에 꽂아주시면 됩니다." 등등의 친절한 말이 오간다. 캠핑장의 경영진이라고 해서 다를 게 없는 위치일 거다. 그들 또한 주변의 수많은 캠핑장들과 경쟁하며 사는 입장이고, 캠핑장을 찾아오는 캠퍼들에 의해 경제생활을 하는 만큼, 수많은 '갑'과 상대하고 있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캠핑장 주인들의 친절함은 내가 현실에서 겪는 친절함과 온도가 달랐다. 


강화도의 어느 캠핑장으로 향하기 전 후기를 읽어봤다. 텐트 설치가 익숙하지 않다는 글쓴이는 캠핑장 주인이 직접 텐트 설치를 도와주었다고 썼다. 내가 간 날에는 비가 왔다. 그래도 나는 혼자 설치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라, 비를 맞으며 타프를 설치하고 있는데, 캠핑장 주인이 망치와 단조팩을 들고 뛰어왔다. 나는 내심 고마우면서도 너무 미안해서 혼자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주인장은 "비가 오니까 그냥 도와드릴게요"라고 답했다. 그분 덕분에 타프와 텐트를 수월하게 설치할 수 있었다. 이런 분이 있는가 하면, 가평의 어느 캠핑장 주인은 내가 매점에서 물을 구입하자, "지금 배낭도 메고 계신데, 제가 조금 있다가 가져다 드릴게요"라고 말했다. 파주의 어느 캠핑장 주인은 내가 고기를 굽고 있는 걸 보고는, "여기는 깻잎이 없으시네, 내가 조금 가져다 드릴까?"라고 했다. 나는 물은 직접 가져갔지만, 깻잎은 받아먹었다.


캠핑장 주인들이 보여준 이러한 친절함은 적어도 나에게 평범하지 않았다. 내가 캠핑장 경영을 하지 않아서 그럴 수 있지만, 내가 주인이라면 고객을 친절하게 맞이하고, 그들에게 친절하게 사이트를 설명한 후, 그들이 원하는 게 있다고 말해오면 그때서 내가 해줄 수 있는 걸 해줄 것 같다.  배낭을 메고 있는 상태에서도 물을 사려고 했을 때는 그걸 들고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랬을 거다. 깻잎이 없이 고기를 먹고 있는 사람은 깻잎을 싫어하거나, 깻잎이 없어도 고기가 맛있기 때문일 거다. 비를 맞으며 텐트를 설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무조건 도움이 필요해 보이지는 않을 거다. 그런 걸 다 감수하면서 즐기는 게 캠핑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들도 캠핑장 문을 처음 열었을 때부터 고객들에게 먼저 도와주겠다고 나서지는 못했을 것 같다. 아무리 변죽이 좋은 사람도 낯선 사람은 낯설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고객들은 식당이나 편의점, 백화점처럼 내 영업장에 왔다가 금방 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적게는 그날 하루를, 많게는 '장박'을 하며 며칠씩 있는 사람들이다. 캠핑장을 관리하며 계속 보게 되는 처지이니, 그들이 신경 쓰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어떤 고객은 2시간이 지나도록 텐트를 못 치고 있었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음식을 챙기지 못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막상 캠핑을 와보니 잠을 자기에는 너무 추울 것 같아 그냥 돌아가려 했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다 신경 쓰이기 시작하고, 그러다 보니 먼저 뭔가를 건네게 되고, 그래서 먼저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일이 익숙해진 건 아닐까. 


나의 이런 추정에 주변 캠퍼는 또 다른 추정을 덧붙였다. 캠핑장 주인들이 유독 친절하다고 느끼는 이유는 캠퍼의 입장 때문이라는 가설이다. 우리는 캠핑장에 가는 것이지, 호텔에 가는 것이 아니다. 호텔에 간다면 호텔의 서비스를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캠핑장은 처음부터 어떤 서비스를 기대하고 가는 곳이 아니다. 내가 집을 짓고, 내가 직접 요리하고, 내가 일일이 정리하고 청소하는 걸 감수하고 가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예상하지 못한 친절을 제공받았을 때, 캠퍼가 느끼는 친절함은 호텔의 친절함보다 더 크게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란 이야기다. 듣고 보니 그럴듯했다. 나에게 먼저 도와주겠다고 다가오는 친절함. 이건 현실에서는 거의 경험하지 못하는 종류의 친절함이다. 캠핑장에서는 더더욱 예상하지 못한 친절함이다. 캠핑장 주인들은 현실의 주인들보다 더 친절할 수밖에 없다. 내가 아직 캠핑을 많이 안 해봐서, 이런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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