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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May 16. 2020

텐트 피칭은 어른의 두꺼비집 만들기

[언제나 초조한 사람의 캠핑] 철거와 설치를 반복하면서도 끝까지 피칭

캠핑장에서 타프를 치고, 텐트를 피칭하다 보면 '현타'가 올 때가 있다. 어차피 내일이면 다시 철거해야 하는데, 이렇게 열심히 쳐야 할 필요가 있나. 어차피 잠만 잘 텐데, 대충 세워만 놓을까. 물론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잠깐 뿐이다. 내일이면 다시 말아 넣어야 할 텐트라도 지금은 텐트의 모양이 잘 잡히도록 쳐야 한다. 힘들게 망치질을 해서 팩을 박고, 잡아당겨서 묶고, 텐트 모양이 이상하면 그걸 다시 풀어서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캠핑장에서 텐트를 피칭하는 건, 단순히 잠잘 공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놀이이기 때문이다. 어른들의 '두꺼비집 만들기'라고 할까? 


텐트보다는 타프 피칭이 재밌다. 현재 많은 캠퍼들이 쓰는 텐트는 빠른 설치를 위해 설계되어 있다. 원터치 텐트도 있고, 텐트 폴대만 끼우면 바로 서는 자립형 텐트도 있다. 하지만 타프는 폴대와 줄, 팩을 모두 써야만 타프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혼자 타프를 치는 게 어려웠지만, 이제는 혼자서 하는 걸 즐기는 편이다. 먼저 타프를 펼쳐 놓는다. 양쪽 면의 가운데에 폴대를 가져다 놓는다. 폴대를 기준으로 양쪽의 적절한 곳에 팩을 받고, 줄로 폴대를 연결해 당기면 타프의 한 쪽면이 선다. 이때 먼저 세운 폴대는 비스듬히 두어야 한다. 그래야 줄이 당기는 힘으로 폴대가 쓰러지지 않는다. 다른 면도 같은 순서로 폴대를 세우면 일단 타프는 거의 다 설치된 것이다. 나머지 2면의 끝에 묶인 줄을 역시 적절한 장소에 박은 팩에 연결한 후, 모든 폴대와 줄을 당겨주면 타프 설치가 끝난다. 한 손에는 팩, 다른 한 손에는 망치를 들고 타프의 모든 면을 왔다 갔다 하며 팩을 박을 때면 나름 운동을 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타프를 설치한 후, 텐트를 펼친다. 내가 주로 쓰는 텐트는 힐맨 벙커돔2 블랙과 백컨트리 제너두 2P다. 벙커돔은 오토캠핑에 주로 쓰고, 제너두 2P는 백패킹에 쓴다. 제너두 2P는 그라운드시트와 이너 텐트와 플라이를 한 번 연결해놓으면 그다음에는 폴대와 연결만 하면 되는 텐트라 설치가 쉽다. 벙커돔은 4개의 폴대를 텐트 스킨에 끼워 넣고, 클립을 끼워야 하는 형태인데 어려운 건 아니지만, 자잘한 순서가 많은 편이다. 제너두 2P를 쓸 때는 베스티블을 함께 연결할 때도 있다. 같은 회사의 베스티블은 아니지만, 대충 규격이 맞다. 


타프와 텐트 설치가 끝난 후에는 텐트 앞부분에 장비들을 놓아야 한다. 대부분의 장비는 폴딩 박스에 넣어놓고 다니는데, 여기에서 캠핑용 테이블과 버너, 랜턴 걸이, 인디언 행거 등을 꺼내놓는다. 그렇게 모든 설치를 끝낸 후, 의자에 앉아서 주변을 돌아보면 뿌듯하다. 잠시 동안이지만, 내가 내 손으로 내 집을 만든 기분이다. 


조립, 설치, 배치... 타프와 텐트는 캠퍼에게 '건프라'나 '레고'와 같은 즐거움을 준다. 내가 만족스러울 때까지 조립하고 배치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그려진 타프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철거와 설치를 10번 넘게 반복한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렇게 해놓고 나면 마음이 좋다. 와, 내가 이걸 했구나. 많은 캠퍼들이 '텐풍' 사진(텐트 풍경 사진)을 남기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나는 아직 저렴하게 캠핑을 하느라, 타프와 텐트의 색깔이 어울리지 않아서 사진을 잘 안남기는 편이다. 언젠가는 겨울의 선자령에 가서 새벽의 '텐풍'을 찍어 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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