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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병진 Jun 25. 2020

이직의 죄책감이 괴로운 당신이 봐야 할 영화의 한 장면

뻔뻔해져도 괜찮다. 

이직은 첫 번째가 제일 어렵다. 이직할 회사를 찾는 것도 어렵지만, 이직을 시도하는 마음이 제일 어렵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과 친하게 지냈다면, 그들과 헤어진다는 상상이 힘들 것이다. 새로운 위치에 있는 새로운 회사로 출근하려고 하니, 귀찮게 느껴질 것이다. 무엇보다 처음 취업한 회사의 상사에게 "저 이직합니다"라고 말하기가 꺼려질 수밖에 없다. 배신자가 된 것 같고, 죄를 진 것 같고, 이왕이면 '좋은 사람'이란 기억으로 남고 싶고, 그런 여러 마음들이 어려운 것이다.


나는 2012년 10월에 처음 이직을 해봤다. 그때도 저런 마음이었다. 고민에 고민이 더해지는 날이 이어지다 보니, 밤에는 잠이 안 오고 낮에는 일도 되지 않았다. 이직의 여러 절차 끝에 최종 면접을 하러 가는 날에는 그냥 저 회사 대표가 나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냥 다니던 데에 다니지 뭐... 연봉은 좀 적어도 일하기는 편하잖아. 나는 이직을 시도하는 동시에 원래 다니던 회사의 장점들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 회사의 대표는 딱히 나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보이지 않았는데, 나의 채용을 승인했다. 마음이 더 힘들어졌다. 이제는 내가 먼저 '이별 통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이미지로 남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죄의식을 덜 느낄 수 있을까... 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첫 번째 회사에서 그 이야기를 꺼내기가 너무 힘들어 '대상포진'까지 걸린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다. 어쨌든 나는 당시 5년 넘게 다녔던 첫 직장에 이별을 통보했다. 몇몇 사람에게는 서운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죄송하다고 했다.


나는 이후에도 몇 번 더 이직을 했다. 첫 번째 회사를 그렇게 나오고 나니, 나는 나 자신이 FA 계약을 하게 된 야구선수 같았다. 더 좋은 곳에서 더 많이 준다고 하면, 그곳으로 가는 게 프로의 이치 아니겠나. 그래도 이직의 죄책감이 없지는 않았다. 다만 첫 번째 이직에 비해 옅어졌을 뿐이다. 그처럼 이직의 죄책감이란 이직이 반복돼도 사라지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첫 번째 이직의 죄책감은 좀 과한 느낌이 있다. 굳이 그렇게까지 느낄 필요는 없는데, 란 생각이다. 이직이란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 여러 회사를 경험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첫 직장에서는 몰랐던 나의 실체를 두 번째 직장에서 깨달았다. 그래서 세 번째 직장에서는 좀 더 행복할 수 있었다. 지금 첫 번째 이직의 죄책감을 느끼고 있는 사람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감정이라고 해도 ‘대상포진’에 걸릴 정도의 과한 죄책감은 문제가 있다. 그런 사람에게 한 편의 영화를 추천한다.


'제리 맥과이어'다.


나는 이 영화를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95년에 처음 봤다. 처음 봤을 때는 르네 젤위거가 너무 예쁘다고 생각하며 봤는데, 30대가 되어보니 이 영화는 이직의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사람을 위한 장면을 담고 있었다. 바로 '물고기'를 든 그 장면이다.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이직을 할 때마다 이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은 제리 맥과이어는 스포츠 에이전트다. 그는 어느 날 홀린 듯이 글을 쓴다. 선수와의 교감보다는 그 선수를 통해 뽑아먹을 돈에만 치중하는 에이전시의 정책을 바꿔야 한다는 내용의 제안서다. 직원들은 그의 제안서에 감동하고,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회사 경영진이 제리를 문책하자, 모든 동료들이 그를 외면한다. 제리는 해고당한다. 뜻하지 않은 마지막 출근. 제리는 자신의 고객을 다 잃어버린다. 그는 자신과 함께 이 회사를 박차고 나가 '고객 중심'이라는 새로운 비전 하에 일할 수 있는 동료들을 찾는다. 당연히 아무도 그를 따라나서려 하지 않는다. 이때 르네 젤위거가 연기하는 도로시가 손을 든다. 제리는 도로시와 유일한 고객 로드(쿠바 구딩 주니어), 그리고 물고기 한 마리와 함께 회사를 나온다.


10대의 나는 르네 젤위거에 반했고, 그래서 20대의 나는 회사를 나오는 데 저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따라 나와 준다면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첫 이직을 했던 30대 중반의 나는 도로시가 아닌 '물고기'에 주목했다. 그 물고기는 제리의 사무실에 놓인 어항에 살고 있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생사를 같이 했던 이곳을 떠나면서 하고 싶은 말은, 미안하지만… 세상에는 매너란 게 있다는 거예요. 사람을 대하는 법이죠. 물고기도 그쯤은 알아요. 물고기도 매너는 있다고요. 이제 난 회사를 차릴 거고, 물고기들도 데려갈 거예요. 감상적이라고 비웃을 지는 모르겠지만… 물고기는 데려가겠어요."

이렇게 말한 후, 제리 맥과이어는 동료들에게 함께 나갈 사람이 없냐고 묻는다. 이 장면은 물고기 때문에 더 슬프다. 제리는 '여기 있는 너희보다 물고기가 낫다'며 다른 동료들을 비난하기 위해 '물고기'를 언급한다. 그런데 사실 제리가 물고기를 굳이 비닐봉지에 넣은 이유는 '외로움' 때문이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은 제리 맥과이어의 일장 연설 장면에서 그를 멍하니 바라보는 동료 직원들의 얼굴을 비춘다. 누군가는 고개를 가로젓고, 누군가는 하품한다. 제리 또한 그들의 표정에서 절망을 느꼈을 것이다. 그때 물고기가 눈에 띈 것이다. 제리는 평소 그 물고기들에게 사료를 던져 준 적도 없었겠지만, 그때 그의 눈에 띈 물고기는 자기가 이 회사에서 자기 마음대로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생명체로 보였을 것이다. "이제 난 회사를 차릴 거고, 물고기들도 데려갈 거예요." 이 장면에서 톰 크루즈는 정신 분열증 캐릭터를 연기하듯 제리 맥과이어를 보여준다. 톰 크루즈의 연기는 너무 연기 같지만, 그래도 톰 크루즈이기 때문에 매혹적이다. '물고기'가 아니었으면 제리의 외로움은 전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오른 손에 든 저 물고기에 주목하자., 

첫 번째 이직에 괴로워하는 사람이라면, 제리 맥과이어의 퇴사 장면을 보면서 자신을 그와 같은 '외로운 사람'에 대입해봐도 좋을 것 같다. 지금 나는 제리 맥과이어처럼 불쌍하고 외로워. 지금 나는 새로운 가치를 위해 이곳을 떠나는 거야. 그래서 나에게도 저 물고기가 필요해. 물론 이직을 결심하고 먼저 회사에 이별통보를 하는 사람들은 제리 맥과이어처럼 먼저 이별당한 사람과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래도 '아무렴 어떠냐'는 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어차피 지금 느낄 필요도 없는 죄책감을 갖고 있는데, 자신과 상황이 다른 사람에게 잠시 이입하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첫 번째 이직을 하는 당신은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맞고, 자신이 틀릴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낄 수도 있다. 영화 속 제리 맥과이어도 마찬가지다. 그는 큰 목소리로 동료들을 비난하지만, 사실 모든 게 두려운 상황이다. 돈을 벌어다 줄 고객은 1명밖에 없고, 능력 있는 동료들은 따라 나오지도 않는 상황. 하지만 제리는 결국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 돈도 많이 번다. 첫 번째 이직에 괴로워하고 있다면, 제리 맥과이어의 이야기가 허황되어 보여도 그처럼 뻔뻔해지는 게 좋다. 나의 선택이 틀린 것 같지만, 일단은 맞다고 우겨보는 것이다. 어차피 지금 와서 돌이키려면 그만큼의 고통을 또 느껴야 할 테니 말이다. 


그게 너무 지질한 짓 같으면, 해고당한 제리 맥과이어가 아니라, 오랫동안 자신을 가두었던 틀에서 벗어나려 애쓰는 제리 맥과이어에 이입해도 좋겠다. 더 좋은 복지와 더 많은 연봉을 쫓아 이직을 한다고 해도, 이직이라는 건 결국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이때 제리의 물고기는 급하게 찾은 유일한 친구가 이니라, 새로운 곳과 새로운 틀로 나를 안내하는 요정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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