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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방금 진짜 작가 같았다

현루 작가님의 세라비 리뷰를 읽고

by 마봉 드 포레

현루 작가님이 ‘리뷰로 만나는 작가들' 연재를 시작하셨다. 그전에 마음의 위로, 혹은 작가님 본인의 출가 이야기 등을 연재하셨던 것과는 사뭇 결이 다른 주제여서 흥미롭게 읽어본 나는 정말 깜짝,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로 너무 놀랐다. 이 분은 대체 못하시는 게 뭔지 모르겠다. 진짜 평론가의 언어로 작가의 글을 분석하고 계셨다. 나는 그전에 작가님이 '살롱 드 아무말'에 올리셨던 소설 초안에 내가 뭐라고 주제넘게 평가를 달았던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말 그대로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고 돼지 앞에서 코 뒤집은 것이었다.


현루 작가님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가진 재주가 훨씬 많은 분이셨다. 그분이 작가들의 작품을 가지고 리뷰를 쓰신 것을 보면 당장 TV나 라디오의 도서 리뷰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셔도 부족함이 없을 정도의 고도로 세련되고 전문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계셨다. 말씀하시기로는 오랫동안 출판사 쪽 리뷰 일을 해 오셨다고 했는데 확실히 하루이틀 해본 솜씨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런 분께서 "내 글을 리뷰해 주셨다는 것"이다.


예비 회차 제목에 내 필명이 오르기 전에 댓글로 이미 알려주셨지만 사실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의 글과는 달리 현루 작가님이 리뷰하고자 하는 글은 나의 비소설류에 해당하는 글이 아닌 '세라비 : 장하다 라를르의 딸'이었다. 현재 26화까지 올라가 있고 작가님이 리뷰를 올리신 11월 20일에는 이미 20화가 올라온 상태였다. 1화만 리뷰할게 아니라면 적어도 앞에서부터 정주행을 해야만 가능했다. 작가님이 리뷰해 주신 회차는 무려 14화. 즉 14화까지 리뷰를 위해 정독하셨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어느 리뷰보다도 내 글의 리뷰가 제일 길었다. 아마도 14화까지의 내용 요약과 주인공, 사건, 공간, 상징, 세계관 등이 일일이 다 들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현루 작가님은 두 주일 동안 정독하고 여러 번의 퇴고를 거쳐 쓰셨다고 하셨다. 나의 졸렬한 글에 이렇게 정성을 들여 리뷰를 해주시다니 대체 어떻게 보답해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내용은 더욱더 놀라웠다. 작가가 보는 관점과 독자의 관점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작가가 의도하는 것을 독자가 항상 알아채는 것도 아니고, 독자가 느끼는 것을 작가가 반드시 의도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과 같다, 다르다를 논할 것은 아니다. 그저 리뷰 자체의 퀄리티가 너무 고차원이었다. 모든 문장 하나, 구절 하나하나가 다 놀랍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게 읽었던 부분은 '캐릭터 심층 분석: 세라비의 3중 정체성'이라는 부분이다. 내가 3중 정체성 해야지! 하고 생각하고 쓴 건 아니지만 어쨌든 세라비의 캐릭터 특징에 있어서 정확히 나의 의도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솔직히 읽으면서 가슴이 두근거렸다. 이게 간파되다니! 이게 독자의 눈에 보이다니! 소설을 쓴 보람이 느껴졌다! 세상에 웬일 나 진짜 작가 같아...!!!


3. 캐릭터 심층 분석: 세라비의 3중 정체성

세라비는 게으름의 화신이자 운명의 주인공이다.

첫 번째 정체성은 게으름(라를르의 백수)이다.

“레모네이드 마시며 물멍”.

내면 독백:

“제기랄, 입신양명 못하면 귀신 돼서…”.

게으름은 방어기제, 세상 회피.

두 번째 정체성은 실용(생존의 리더)이다.

왕자 짐 과감 정리, 반값 흥정 성공.

필요할 때만 움직이는 현실적 판단.

세 번째 정체성은 운명 수용(검사 각성)이다. 조상신 압박 → 검 구매. 사기 → 주인을 찾아온 검. 마지못해 수용이 성장의 시작.

레이는 실용적 조력자이자 독자의 대리인이다. 생존 지식, 퐁듀 위로, 고대 문자 해석으로 세라비의 감정을 안정시키고 서사를 추진한다.

노인은 사기꾼이자 운명의 전달자다.

조상신, 금빛 검, 반값은 클리셰지만, 가게 사라짐으로 신비를 획득.



내가 글을 쓰면서 이 글의 주제는 뭘로 해야지! 하고 의식하면서 쓰지는 않지만 작가님은 이 회차의 주제를 이렇게 요약해 주셨다.


7. 주제 분석: 게으른 자의 운명

14화의 핵심 주제는

게으름과 운명의 역설이다.

게으른 자도 운명을 피할 수 없다.

물멍 → 산행 → 검사 각성.

사기당한 것이 운명의 선물.

반값 검 → 주인을 찾아온 검.

과정의 본질.

목적지(칼베르) → 미지(브뤼메 산맥).

세라비는 반영웅. 떠밀려 떠남, 약함 인정, 사기로 승리. 완벽하지 않아도 운명은 찾아온다.



또한 '인물의 상징'에 이런 표현이 있어서 매우 흥미로워서 갖고 왔다.


4. 인물의 상징 — 세라비, 레이, 플로르

세라비가 ‘무위의 인간’이라면, 레이는 ‘지식의 인간’이다.

그는 마법사이자 조언자로, 세라비의 내면에 자리한 이성의 목소리를 상징한다.

반면 플로르 왕자는 감정과 순수함의 화신이다. 그는 권력보다 진심을 중시하며, 세라비의 ‘깨어남’을 자극하는 존재다.

이 세 인물은 고대의 삼원 구조를 닮았다.

의지(세라비), 지성(레이), 감정(플로르).

이들의 상호작용 속에서 작가는 인간 내면의 균형을 탐색한다.

세라비의 여정은 외적 모험이자 내적 통합의 과정이다.



나중에 게로스가 등장하면 또 다른 상호작용의 축이(플로르보다 더 거대한) 생겨날 것이지만, 사실 나는 세라비, 레이, 게로스가 주인공이고 플로르와 레이첵은 주인공과 서브 중간쯤 되는 포지션으로 굴리고 있었기 때문에 플로르를 세라비나 레이과 동등한 삼원축에 놓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그러나 14화까지를 두고 본다면 이 삼원축이 맞는 것 같다. 플로르는 이 시점에서는 세라비와 비교한다면 감정의 축을 담당하는 쪽이 맞는 것 같다.


아무튼, 맞고 안 맞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나는 작가님의 통찰력, 그리고 아마도 판타지를 많이 읽어보시지 않았다면 내 글을 읽으실 때 외래어 기반의 지명, 인명 등으로 인해 좀 읽기가 힘드셨을 텐데(내가 러시아 소설 읽으면서 욕하는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글을 리뷰해 주시기 위해 정독해 주시고, 리뷰와 거듭된 퇴고를 거쳐 이런 스케일의 리뷰를 - 마치 내가 진짜 출간작가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전문적인 리뷰여서 솔직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 써 주신 현루 작가님께 이 자리를 빌려 다시 감사드린다.


세라비는 어떻게든 종이책으로 나올 작품이다(아무 데서도 안 내주면 자비출판이라도 할 거니까, 확실히 나온다고 장담한다. 돈이 없으면 빚을 내서라도 할 거다). 종이책이 나오게 되면 현루 작가님께는 저자 친필 사인본을 반드시 보내드릴 것을 약속드린다. 물론! 외전까지 포함이다(본편이 너무 길어서 힘들어하셨던 분들도 외전만큼은 즐겁게 읽으실 수 있을 거라고 확실하게 내 손가락을 걸고 장담한다).


현루 작가님, 정말 감사합니다.

보잘것없는 제 글을 너무나 훌륭하게 리뷰해 주셔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허락 없이 본문을 가져다 썼습니다. 혹시 문제가 되거나 불편하시면 링크로 대신하겠습니다. 댓글로 말씀해 주세요)

마봉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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