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증거

4장. 주방에 남겨진 컵

by 송희애

하루를 마치고 주방에 들어섰을 때,
싱크대에 컵이 하나 남아 있었다.

물이 반쯤 남아 있는 컵.
씻지 않은 자국,
손가락 자국,
입술 자국까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컵을 들며 생각한다.
“아이가 아침에 마셨던 보리차일까?”
“남편이 퇴근하고 마신 커피일까?”

건조대에 놓인 그릇과 냄비,

조리대에 있는 빨간색 자국.

빨간색, 검은색 점이 섞여 있고

심큼하지 않은 짠내만 난다.


"누가 몰래 먹은 라면의 흔적인가?"


나는 그렇게 하루를 역추적한다.

이건 직업병이기도 하고,
사랑의 방식이기도 하다.

현장에서는 이런 걸 접촉흔이라 부른다.
누가 거기에 확실히 있었다는 단서.

사람도 마찬가지다.
입술과, 손의 위치,


어디에 있었고, 무엇을 느꼈는지를 남긴다.

그래서 나는 컵을 닦기 전에,

빨간 자국을 지우기 전에

잠시 멈춘다.
사랑은 어쩌면, 그런 작은 멈춤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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