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도의가 수술방에서 환자를 어떻게 다루는지 전혀 모르지만 정비소에서 만난 어떤 메카닉의 손놀림을 보고 대략적으로 알 것만 같다고 생각한 적 있다. 기계를 전혀 모르고 자동차도 모르기 때문에 정비소를 굉장히 방어적으로 고르고 고르다 보니, 누군가의 추천으로 노원(멀리)까지 가게 되었는데, 그전에 몇 번의 눈탱이를 맞아봐서인지, 그 정비사님의 진단과 치료 솜씨가 어딘가 예사롭지 않음이 단박에 느껴졌다.
일단 정비소가 낡았지만 깔끔했고, 스패너나 렌치 같은 게 그 크기만큼의 제자리에 딱딱 붙어 있었다. 말씀하시는 사이사이에도 손은 계속 그것들을 닦거나 조이고 계셨다. 시동소리에서 이미 견적을 내실정도로 척하면 척이신데, 그럼에도 섣불리 선고하지는 않으신다. 고개를 갸웃하며 온도나 소리나 진동 같은 것들을 부분 부분 몇 번이고 꼼꼼히 점검하셨다. 차의 연식과 운전자의 상황(금전적 상황, 운전빈도 등등)을 모두 고려해서 가장 합리적인 선을 찾으시려 노력하시는 게 느껴졌다.
사실 그리 저렴한 곳은 아니었지만 합당한 공임비임을 수긍했다. 차장님, 그 정도는 받으시는 게 맞아. 가끔 고품질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좋은 마음으로 너무 최저가로 내어 놓으시고 치킨게임판에 제 발로 입장하시는 분들이 있어서 안타깝다.
'1mm 오차에서 사람 생명이 갈리니깐요'
라고 말씀하신 게 제일 기억에 남는다. 그런 생각을 짧지만 단순한 문장으로 만들어 뼈에 박아놓고 있는 그 감각이 곧 책임감이고 집중력이고 정교함이 되는 게 아닐까. 볼트의 색변화까지도 단서가 된다며 친절하게 설명 해주시는 정비사님 흔치 않다.
수많은 매뉴얼과 체크리스트사이에서 숨 막히지 않느냐 물었더니, 그것들이 오히려 혼돈에서 숨 쉬게 해주는 거란다. (이때 나도 모르게 쏘주한잔 하고난 크 소리가 나와버렸다!)
이사를 오는 바람에 그런 분을 또 찾아야 한다는 게 곤혹이다.
비슷한 딴소리)
여행 중에 '디스카운트 플리스'라고 하는 건 무례하기 짝이 없는 언행이다. (심지어 이렇게 가르치고 있고 현장에서 '디스카운트 플리즈'를 너무 많이 들어왔다.) 물론 바가지 씌우는 것도 그것대로 문제지만, 제시된 금액을 무작정 후려치려는 욕심 뒤에 Please 만 붙여서 '난 선량하고 넌 악랄해' 프레임 위에 슬쩍 무임승차 하려는건 참 얄팍하고 격 떨어지는 일이다. 도둑놈이 쳐들어와서 "손들어 PLZ, 돈 다 내놔 PLZ"한다고 젠틀맨이 되는 게 아니듯이. 정 돈이 없으면 사정이야기를 해보고 가능성 여부를 묻는 표현(can you~? Is there any chance~?) 정도를 시도해 보는 태도가 곧 맞는 언어라고 본다. 언어력은 알고 있는 단어 숫자보다 공기를 흩트리지 않는 센스에서 드러난다.
온라인 쇼핑생활에서는 좀처럼 없지만, 재래시장에서는 판매원이 곧 사장님이므로 꼭 가격이 아니더라도 이런저런 협상(네고)을 할 수가 있는데, 난 사실 그런 식의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재밌다.(옛날사람이라서일 수도 있고..) "사장님 여기 대파 떨이 제가 다 살게요. 양파는 요즘 제철이고 노다지니까 500원 빼줘요. 그러고 이제 접고 퇴근하시면 되겠네" 식으로 너와 나의 이해관계에 걸친 제안을 해 볼 수가 있어서다. -나도 좋지만 너에게도 이런 득이 있어. 어떻게 생각해? 400원은 어때? 아니면 말고- 소상공인한테 푼돈마저 뺏냐-라고 하실지 모르나, 500원 에누리는 손익이 아니라 그냥 재미요소 같은 것. 가끔 고객임에도 붕어빵을 하나 내어 드리고, 여행지에서 사 온 쪼꼬렛같은것도 드리기도 하고. 오늘내일하는 갈색 바나나를 그냥 충동적으로 사드리고 그날 저녁은 바나나 못 먹고 죽은 원숭이 귀신이 되기도 하고. 내 소비생활이라는 게 이토록 불안정하지만 그냥 이런 게 재미다. 물건 사고 생을 사는 재미. 그리고 늘 그렇지만 재미에는 기예가 필요한 법.
쇼핑중에 내가 "혹시 카드사 이벤트나 할인적립정책 중에 뭐 좀 제가 도움받을 게 있을지요?" 하고 점원에게 묻는걸 보고 친구가 너무 저자세 아니냐며 그렇게 하면 쇼핑백 하나도 챙기지 못한다고 일갈한 적 있다. 하지만 나도 점원으로 일을 해봐서 아는데, 이런식으로 가능성을 탐색해 들어오는 손님이면 서비스를 더 챙겨드렸기때문에 나는 다짜고짜로 할인을 요구하진 않는다. 이것아.
상대의 선택권을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가능한 지점을 찾아가려는 태도가 지우개 쪼가리 하나 사면서도 챙겨야할 스피릿 아닐까. 거래가 아니라 상호조정 인 것이다. 이쯤되면 인간의 모든 커뮤니케이션은 '협상'으로 보인다. 사랑고백도 협상이고 분노표출도 협상이다. 그리고 그 협상의 태도는 아주 작은 손동작이나 미세한 호흡처럼 작동한다. 숙련된 메카닉의 손끝처럼.
(나는 협상이라고 했지만, 한나 아렌트라는 멋진 여자가 '세계에 대한 제안proposal for the world' 라고 표현 해 주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