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를 사랑한 꼬마
헬러윈데이가 다가오면 거리 곳곳에 호박과 유령 장식이 눈
에 띈다. 그중에서도 가장 시선을 끄는 것은 단연 호박등불
이다. 그렇다면 이 호박등불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을까?
그 유래는 아일랜드의 민속에서 비롯되었다. 전설에 따르면
술주정뱅이 잭은 악마를 속인 뒤 죽어서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무화과나 호박 속에 등불을 넣어서
들고 떠돌아다니게 되었고, 이 이야기에서 비롯된 호박 등불
은 악령과 나쁜 영혼을 쫓는 보호의 상징이 되었다. 뿐만 아
니라 호박은 가을의 풍요로움과 수확을 의미하고, 어둠 속에
서도 환히 빛나는 희망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이처럼
아일랜드의 전설과 호박에 담긴 의미는 결국엔 모두 보호받
기 위해서, 또 좋은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라는 바람을 담아
우리 곁에 전해진 '이야기'인 셈이다.
이야기. 나는 그런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사랑했다. 그래서
어린 시절 내 곁에는 언제나 책이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 보면, 잠깐 책을 놓는 순간조차 아쉬웠고, 걸어 다닐
때도 늘 머릿속은 책 속의 세상에 빠져있었다. 하루 종일 시
간이 나는 대로 다양한 책을 읽었고, 글짓기 대회에 나가는
걸 진심으로 즐기던 꼬마였다. 어머니께서 간직해 주신 어린
시절 글짓기 대회 상장들은 지금도 우리 집 서랍장에 자리하
고 있다. 누군가의 권유나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읽고 싶다'
, ‘쓰고 싶다’는 스스로의 마음에서 시작된 독서와 글쓰기였
기에 그 힘은 오래 이어졌다. 그렇게 나는 아름다운 책의 숲
속에서 살았다. 현실과 이야기의 경계를 넘나들며, 나는 자
유롭게 훨훨 날아다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어른이 된 나는 점점 이야기를 놓아
버리게 되었다. 세상엔 신경 쓸 것도, 감당해야 할 일도 많았
다. 공부와 직장 생활은 또 다른 호기심과 즐거움을 주었지
만, 언젠가부터 어린 시절 가장 가까웠던 친구 같던 이야기
는, 조금씩 내 곁에서 멀어져 갔다. 그럼에도 내 마음 깊은 곳
에는 언제나 알 수 없는 허전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언니가 브런치 스토리 작가가 되었다는 소식
을 전해왔다. 늘 언니가 하는 건 뭐든지 따라 하고 싶었던 호
기심 많은 나는 곧바로 작가 신청을 했다. 그러나 보기 좋게
떨어졌다. 누구나 할 수 있으리라 쉽게만 생각했던 나의 안일
한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뭐야, 신청하면 다 되는 거 아니었어? 흥! 안 할래."
속상하고 심통 난 마음으로 지내던 나날이 하루, 또 하루 흘
러갔다. 그렇게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려 했지만, 단단히 뿌리
뽑히지 않은 아쉬움과 울적한 마음이 계속 도드라졌다. 결
국 마음을 다잡고 이번에는 진심을 담아 몇 번이고 글을 쓰고
고쳐 다시 지원했다. 그리고 기다림 끝에 드디어 기쁜 결과
를 받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나는 처음 합격 소식을 들었을
때처럼, 글을 쓸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작은 설렘과, 행
복한 웃음을 지으며, 다시 아름다운 책의 숲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린 시절, 책을 좋아하던 그 꼬마 아이를 다시 만나
게 되었다.
‘작가’라는 단어는 내게 설레는 떨림의 상징이자, 심장을 두
근거리게 하는 이름이 되었다. 그렇다면 작가라는 이름을 선
물해 준 브런치 스토리는 나에게 어떤 의미였을까?사그라들
었던 에너지를 다시금 샘솟게 하는 희망의 상징일까? 아니
면 넘어지고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게 만드는 도전의 상징일
까? 혹은 어린 시절 내 친구 같던 이야기와 다시 만나 글을
써보는 만남의 자리이자, 여러 작가님들과 함께 소통하며
마음을 나누는 소중한 비밀의 공간일지도 모른다. 무엇이 됐
든, 지금 브런치 스토리가 내 삶에서 가장 소중한 우선순위
가 된 것은 분명하다.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이 순간 나는
진정한 행복을 느낀다. 문장들이 피어나는 자리마다 내 하루
의 빛이 스며들고, 작지만 따뜻한 기쁨이 나를 감싸기 때문이
다. 오랫동안 찾아 헤맸고, 마침내 발견한 내 삶의 진정한 의
미 속에서, 나는 지금 충만한 행복으로 가득하다.
문득 어린이집 교사로 근무하며 아이들에게 들려주던 수많
은 동화책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행복한 나는, 오
늘도 꿈꾼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담은 동화를 쓰는 나. 초롱
초롱한 눈빛의 귀여운 꼬마 친구들에게 내 동화책을 펼쳐 보
이며, 신나는 상상으로 가득한 책의 숲으로 아이들을 초대하
는 나. 나긋나긋 다정한 목소리로 동화를 읽어준다. 눈부시
게 빛나는 책의 숲을 날아다니며, 우리는 아름다운 시간을 함
께한다.
브런치 스토리. 바로 이곳에, 나의 꿈을 실현시킬 열쇠가 있
다. 그 열쇠를 열어 무지갯빛 꿈이 담긴 나의 이야기를 펼쳐
내고 싶어, 오늘도 나는 펜을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