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부작 이야기 공방 6
아이가 들고 있던 양말목은 개구리로 점점 모양을 갖춰갔다.
'개구리 인형이구나.'
잠시 아이의 사부작거리는 느긋한 손놀림을 응시하다 글을
쓰는데 몰두한다. 잠시 후 다시 고개를 들어보니, 작은 바구
니를 안고 있는 눈이 또랑 또랑한 개구리가 눈에 들어온다.
'저 바구니에 무엇을 담으면 좋을까..'
미소를 띠며 고민하던 중 아이가 이야기한다.
"엄마 개구리 옆에 아기 개구리도 만들어야겠어."
손재주 별로 없는 엄마는 도무지 흉내도 못 낼 솜씨로, 아기
개구리를 뚝딱 만들어낸다. 딸아이가 나란히 놓은 개구리 두
마리를 보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개구리의 초롱초롱한 큰 눈을 보니 불현듯 떠오르는 친구가
있었다. 눈이 크고 눈동자가 맑은 아이였다. 나의 소중한 단
짝 친구였던 그 아이.
바람이 살랑 불어오는 날 바닥에 떼구르 굴러가는 낙엽만 봐
도 까르르 웃음이 터지던 나의 해맑았던 고등학교 시절을 우
리는 늘 함께했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쪼르르 학교 매점으로 신나게 달려가
간식거리들을 사들고 나온다. 그다음 우리의 이동장소는 학
교 건물 뒤로 돌아 오른쪽에 위치한 햇살이 제일 잘 비치던
밝은 연갈색 벤치.그곳에 앉아 끊임없이 이야기꽃을 피웠다.
방과 후 수업도 같은 십자수반 수업을 신청했다. 그땐 왜 그
그림이 유독 눈에 들어왔을까? 우리는 갈색 얇은 끈으로 묶
인 단정한 초록색 파 한 단이 그려진 그림을 똑같이 골라 열
심히 수를 놓았다.
"이거 완성되면 액자에 끼워서 주방에 걸어놓았다가, 나중에
결혼하게 되면 너도 나도 똑같이 신혼집에 걸자."
히히 웃으며 수놓기 삼매경에 빠졌다.
학교가 끝나서도 우리의 시간은 늘 함께였다. 동네 이곳저곳
의 떡볶이집을 찾아다니며 쿨피스와 순대와 떡볶이를 함께
먹는 그 시간은 세상 제일 달콤하고 맛있는 시간이었다. 스티
거 사진은 왜 그리도 열심히 찍으러 다녔을까? 핸드폰도 삐
삐도 없던 시절이었다. 책상서랍 속에 스티커 사진이 넘쳐났
지만, 늘 처음인 듯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는 그 시간이 즐거
웠고 또 마냥 재미있었다.
그렇게 하루가 모자랄 정도로 붙어 다니며 반짝이는 시간들
을 보냈지만, 그래도 못다 한 우리의 이야기는 둘만의 교환일
기장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그 속에서 시시콜콜한 작은 비밀
들을 함께 공유했다.
서로의 고민을 진심으로 걱정해 주며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
면서 우리의 우정은 점점 더 깊어져갔다.
그 시절의 나는 '우정'이라는 단어에 큰 힘을 실었다. 조금만
힘을 뺐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과 함께 각자 원하는 대학교에 입학을
했다. 학교가 달라졌다. 그러나 우리의 우정은 변하지 않았
다. 그리고 또 하나의 졸업과 함께 우리들의 첫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뿌듯하고 또 때론 지치는 사회생활 속에서도
우리는 서로의 쉼표가 되어주었다. 나의 두근거리는 연예가
한참일 때도 친구는 가슴 콩닥거리는 이야기에 늘 함께 웃어
주었고 귀 기울여주었다.
"있잖아~ 나 결혼하기로 했어!"
나의 설레는 결혼소식을 처음으로 전할 때도 친구는 그 누구
보다 뛸 듯이 기뻐해 주었다.
인생 처음 맞이하게 된 결혼식 준비는 생각보다 너무 어려웠
다. 이것저것 신경 쓸 것도 참 많았다. 그러던 중.. 부케를 받
을 친구를 정해야 할 차례가 되었다.
'이건 당연히 내 단짝 친구가 해주지.'
1%의 걱정이나 망설임도 없던 나는 바로 친구에게 전화를
해 부탁을 했다. 아니 부탁이 아니라 일방적인 통보였을지도
모른다.
"나 결혼식 때 네가 부케 받는 거 해줄 수 있지?"
"응 그래."
친구는 역시 흔쾌히 수락하였다.
그런데 결혼식이 3일쯤 남았을 때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어.. 그.. 부케 받는 거 내가 못해줄 거 같아."
주춤하는 목소리와 거절의 대답. 순간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게 갑자기 무슨 황당한 이야기인
지..
친구에 대한 깊은 배신감이 몰려왔다. 결혼식 준비로 바짝
예민해졌던 나는 친구의 말에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너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어? 내 단짝 친구잖아?
난 네가 당연히 해줄 거라 믿었는데 왜 갑자기 말을 바꾸는
건데? 정말 너무 서운하다. 해주기 싫으면 하지 마! 됐어!"
'그래. 그 자리를 누구든 대신할 순 있겠지..
하지만 난.. 네가.. 꼭 네가 해주길 바랐는데..'
왈칵 쏟아버린 말과 달리, 내 마음속 속상하고 서운한 진짜
속마음은 입 안에서만 맴돌았다. 핸드폰 너머의 친구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후로 친구는 내 결혼식장에도 오지 않았다.
그렇게 10년 넘게 쌓아온 우리의 우정은 허무하게 끝났다.
시간은 흘렀고, 그 사이 세월도 많이 지나갔다.
이제의 나는, 예전처럼 미숙하다고만 할 수는 없지만 그렇
다고 완전히 성숙했다고 말할 수도 없다. 다만, 그 시절의
나보다 조금은 넓어진 마음을 갖게 되었을 뿐.
되돌아보니, 우정이 끝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먼저 마
침표를 찍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날, 친구는 단지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이 어색하고 서툴러
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혹은 처음 받는 부케가 왠지 모르게
부담이 되었을수도 있다. 아니면 정말로,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을까. 그때의 나는 왜 친구에게 이유를 묻지 않았을까.
결혼 준비로 예민했던 마음속에 친구의 이야기를 담아둘 여
유가 없었던 걸까.
내겐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졌던 대답이 친구에겐 그렇지 안
았다는 사실을 그땐 미처 깨닫지 못했다. 돌아보면, 우리는
긴 시간을 함께하면서도 한 번도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친구
사이에 몇 번은 있어야 할 법한 사소한 말다툼조차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마음속에 쌓아둘 기회조차 없이 조용히 멀어
져 버렸다.
불교에는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조급해하지 말
것. 모든 것은 때가 오고 인연이 맞으면 자연히 이루어진다'
는 뜻이다. 아마 우리의 인연이 거기까지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 아이와 함께했던 추억의 색깔은
오히려 더 선명해지고 있다.
"친구야 너의 마음이 어땠는지,
왜 그런지 먼저 물어봐 주었어야 했는데.
그리고 내 솔직한 마음을 말해줄 것을..
너를 이해하는 마음도, 헤아리는 마음도
난 참 부족했던 것 같아. 미안해 친구야."
나의 아름다운 시간들을 함께 했던, 잊을 수 없는 내 친구야,
언젠가 너와 다시 만날 수 있기를..
오늘도 나는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너를 불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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