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작가에서 디저트 가게 사장으로 1
어렸을 때부터 난 몸이 약했다. 다른 아이들보다 체구도 작았고 잔병치레도 많았다. 그래서 다른 애들이 유치원에 다니고 글을 익힐 때, 나는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았다. 유치원을 다니긴 했는데 결석하는 날이 더 많았기에 차근차근 한글이나 숫자 같은 것을 익힐 수가 없었다. 참고로 나는 국민 학교 시절 학교에 입학했고, 그 무렵엔 한글이나 숫자를 모르고 입학하는 친구들이 많았기에 뭐 큰 문제도 아니긴 했다. (다행히 지금은 건강하다 못해 건장한 사람이 되었다)
아파서 집에만 있던 나에게 위로가 되었던 건 책이었다. 당시 집에는 책이 정말 많았는데 장난감처럼 책장에서 아무거나 꺼내서 펼쳐놓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글씨를 모르기에 그림만 보고선 내 멋대로 이야기를 상상해서 읽곤 했다. 어쩌면 이게 작가로서의 첫걸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종종 내가 지어낸 엉터리 이야기들을 가족들에게 읽어주기도 했는데, 이 엉터리 이야기를 재미있다고 들어줬던 가족들 덕분에 난 이야기를 지어내는데 더 흥미를 느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나중에 커서 글 쓰는 사람, 이야기를 지어내는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맞다, 난 어렸을 때부터 작가가 꿈이었고, 어린 시절의 꿈을 이뤄낸 행복한 사람이다.
사실 오롯이 작가만을 꿈꿨던 것은 아니었다. 꿈 많은 사춘기 시절에는 대학 입시를 앞두고 다른 직업을 꿈꾸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욕심이 정말 많아서 이것저것 배우고 있던 게 많았던지라 꿈도 다양했다. 갑자기 일본어에 관심이 생겨서 번역가나 통역가를 꿈꾸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배워온 피아노를 전공으로 가져가서 피아니스트가 되어야겠다는 아름다운 꿈을 꾸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일본어나 피아노에 ‘재능’이 있지 않았다.
나는 '재능'이라는 것이 꼭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것을 할 때 견뎌내는 힘도 재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피아노를 아무리 잘 친다고 한들 연습실에서 몇 시간이고 같은 곡을 연주할 수 있는 끈기가 없으면 피아노로 먹고 살 수 없다. 같은 맥락으로 시간이 흘러 내가 업으로 삼은 일 때문에 가난해져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자신이 없어지면 재능이 없는 거다.
몇 시간이고, 며칠이고 계속 할 수 있는 힘. 업으로 삼은 일 때문에 고통스러워져도 버틸 수 있는 힘. 그런 힘이 있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글 쓰는 것'이었다. 그래서 난 작가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언젠가 엄마가 나에게 작은 일기장을 선물해 준 적이 있다. 엄마가 날 가졌을 때 썼던 '태교 일기'였다. 그 일기에는 내가 태어나면 글을 쓰는 작가가 될 거라고 쓰여 있었다. 이게 바로 ‘타고났다는 것’인가? (푸하하!)
그렇다면 베이킹은? 재능이 있었나?
처음 베이킹이라고 할만한 것을 만든 것은 ‘도나스’였다. 어릴 때 시골에 계신 할머니 댁에 가면 할머니가 기름에 튀긴 후 설탕을 솔솔 묻힌 맛있는 빵을 만들어 주셨는데, 그게 너무나 신기했다. 그게 도나스였다. 노랑 봉투에 담긴 가루를 이렇게 저렇게 둥글둥글하면 말랑말랑한 반죽이 되고. 그걸 넓게 펴서 동그랗게 찍어낸 다음 기름에 튀기고, 따뜻할 때 설탕에 데굴데굴 굴리면 도나스가 된다. 요즘처럼 오동통하게 살이 오르고, 초콜릿이나 과일 같은 토핑이 호화롭게 올라간 도넛과 비교하면 꽤나 수수한 디저트였지만 (이름이 주는 분위기도 상당히 다르다)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가루가 지점토 같은 반죽이 되고, 그 반죽이 부풀어 빵이 되는 과정은 어린 나에게 마술과도 같은 일이었다. 게다가 그렇게 맛있는 빵을 만들어 가족들과 함께 먹는 그 시간이 굉장히 행복했다. 나에게 베이킹이란 만드는 것도, 나누는 것도 행복 그 자체였던 거다. 그래서 할머니 댁이 아닌 집에서도 도나스를 만들어서 가족들과 함께 먹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식빵도 굽고 파운드케이크도 굽는 등 본격적인 베이킹을 시작했다.
둘 다 순전히 내가 좋아서 시작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좋아하는 것이 언제나 행복을 줄 순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