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요즘 ‘좌뇌를 어떻게 학습시킬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본다.
좌뇌의 대표적 특징은, 우리가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들 사이에 인과 관계와 설명을 끝없이 붙이려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세상을 조각난 채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조각들 사이의 공백을 불편하게 여기고, 그 빈틈을 어떻게든 채워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고 싶어 한다.
이 해설 욕구야말로 좌뇌의 본능적 성향이다.
뇌과학의 고전 실험이 이를 잘 보여 준다.
뇌량 절제술을 받은 분리뇌 환자를 대상으로,
화면 중앙을 응시하게 하고
왼쪽 시야(우뇌)에 눈 덮인 풍경,
오른쪽 시야(좌뇌)에 닭 발 그림을 각각 보여주었다.
그 결과, 왼손은 ‘삽’을, 오른손은 ‘닭’을 고르는 기묘한 선택을 보였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왜 삽을 골랐나요?”라고 묻자,
좌뇌는 이렇게 대답했다.
“닭장을 치우려면 삽이 필요하니까요.”
좌뇌는 눈 덮인 풍경을 본 적이 없음에도,
손이 고른 삽을 보고 즉석에서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낸 것이다.
뇌과학자 가자니가는 이 현상을 보고
좌뇌를 ‘인터프리터(interpreter)’, 즉 해설자라고 불렀다.
정보가 불완전해도 좌뇌는 빈틈을 참지 못한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관성 있는 설명을 만들어 세상을 이해하려 한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학습 아이디어를 얻는다.
우리가 책을 읽거나 영어 듣기를 하거나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일 때,
모든 정보를 완벽하게 입력하려 애쓰는 완벽주의적 태도는 우리를 쉽게 지치게 한다.
모든 단어를 정확히 해석하려 하고,
누락된 정보가 있으면 불안해하며,
공백 없이 전부 기억해야 한다고 자신을 몰아세운다.
그러나 좌뇌가 본래 ‘빈틈 메우기 전문가’라면,
우리는 오히려 적당한 공백을 남겨두는 방향의 학습을 설계할 수 있다.
즉, 정보를 받아들일 때
‘100% 정확한 입력’을 목표로 하기보다,
듣고 읽는 과정에서 보편적인 의미가 잡히는 수준까지만 받아들이고
세부에서 내용에서 빠지는 부분은
좌뇌의 해설 능력이 천천히 메우도록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이 방식은 두 가지 이점을 준다.
첫째, 완벽주의로 인한 학습 부담을 덜 수 있다.
둘째, 좌뇌가 스스로 인과 관계를 구성하고,
맥락을 이용해 의미를 보완하는 능력을 강화할 수 있다.
좌뇌는 본래 이런 일을 잘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공백이 있을수록 오히려 더 활발하게 작동한다.
물론 좌뇌는 때때로 ‘틀린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과정 자체가 이해의 골격을 세우는 훈련이 된다.
모든 정보를 정확히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불완전한 정보 속에서도
맥락을 구성하고 의미를 재건하는 능력이 강화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이것이 좌뇌를 학습시키는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강력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방법은 말하기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완벽한 문장을 만들려다 침묵하는 것보다,
떠오르는 표현을 직관적으로 말해 보고
좌뇌가 그 말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가도록 맡기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좌뇌는 말하기 과정에서 부족한 연결을 발견하면
그 공백을 채우기 위해 스스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며,
그 과정에서 말하기 인터페이스가 점점 강화된다.
결국 좌뇌 학습의 핵심은 단순하다.
“빈틈을 두고, 좌뇌가 일하게 하라.”
모든 것을 완벽하게 알려고 애쓰는 대신,
적당한 공백과 미완의 여지를 남겨 두면
좌뇌는 인과 관계, 이야기, 의미를 스스로 구성하며
자연스럽게 학습을 진행한다.
나는 이 방식이 단순한 학습법이 아니라
하나의 사고 훈련이라고 믿는다.
불완전 속에서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는 능력,
그 능력이야말로 학습의 본질이며
인간이 가진 가장 독창적인 인지적 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