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맛 젤라또와 생강맛 리몬첼로

70일간의 유럽 여행 (2) - 이탈리아 로마

by hye


집 가는 길에 있는 성당의 장식들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낭만적인 야경이었다.



2. 수박맛 젤라또와 생강맛 리몬첼로



로마에서 맞는 첫 아침이었다. 숙소 사람들이 모두 바티칸 투어를 가는 날이라 새벽같이 일어났고,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나도 같이 잠이 깼다. 동행과 만나기로 한 시간은 10시 반, 시간이 한참 남았다. 뒤척거리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일어나서 화장을 했다.


로마의 5월은 생각보다 더웠다.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반팔을 입지 않으면 안되는 날씨였다. 제일 좋아하는 빨간색 원피스를 꺼내입었다.


동행언니와는 숙소가 한 블럭 거리여서 길 위에서 만났다.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은 직장인 언니였는데, 성격이 좋아서 금방 친해졌다. 언니에게 팔짱을 꼭 낀 채로 시내에 나가기 위해 버스를 타러 갔다.


이탈리아의 버스에서는 서양인의 냄새가 가득했다. 유전자 상 동양인의 나라에서는 절대 맡을 수 없는 암모니아 냄새가 코를 찔렀다. 눈살을 찌푸리며 좁은 버스에 갇혀 있는데, 마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리즈 시절을 연상케 하는 남자를 보았다. 언니와 말하지 않아도 서로 알아차렸다. 여자들의 미남레이더란. 역시 이탈리아는 미남이 많다더니, 또 체감하는 순간이었다.


어느 골목에서 내려 터벅터벅 걸었다. 유럽 특유의 돌바닥, 좁은 골목, 말이 지나다니는 거리. 온통 생소하고 신기한 것들이라 미소가 떠나지를 않았다. 우와. 골목을 한창 구부정 구부정 지난 후에야 탁 트인 곳에 도달했다. 그리고 마주했다. 3천년 전 로마의 흔적을.




복작복작한 골목 사이에 숨겨진 광장에 위치한 판테온은 웅장하기 그지 없었다. 생각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그 웅장함은 규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그리스의 파르테온 신전을 연상케 하는 위풍당당한 그 시절의 풍채에 나는 압도될 수 밖에 없었다.


우리는 판테온 앞의 타짜 도로 커피로 들어갔다. 콘파냐 두 잔을 주문하고, 언니의 숙소 사장님이 싸주신 샌드위치를 나눠먹었다. 블루베리잼이 든 샌드위치는 처음이었는데 새콤하니 맛있었다.


커피의 나라 이탈리아에서의 첫 커피. 에스프레소 바는 몇 번 가보아서 좀 익숙하다고 생각했는데, 나온 콘파냐는 비주얼이 좀 달랐다. 오히려 작은 프라페에 가까운 생김새였다. 부드러운 크림과 유럽의 에스프레소의 쓴 맛을 느끼며 노상에 앉아 이탈리아의 5월의 햇살을 느꼈다.


판테온의 줄은 무척 길었지만 생각보다 빨리 빠졌다. 판테온에 들어서마자 서늘하고 시원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오기 전에 벌거벗은 세계사 강의를 듣고 온 보람이 있었다. 판테온의 테온은 신전을 뜻한다. 여러 신을 모시던 사원이었다. 그러나 수많은 역사를 거치고, 판테온은 성당으로도 쓰였다가 현재는 무덤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유명한 바이올리스트이자 작곡가 코렐리, 르네상스 3대 화가 중 하나인 라파엘로도 이곳에 묻혔다.


판테온이 위대한 이유는 바로 이 구조 때문이다. 당시 아치 구조가 굉장히 유행했고, 이 아치 구조를 360도로 적용한 건물이 바로 돔이다. 아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키스톤, 아치의 중심부에 위치한 돌이다. 이 돌이 모든 힘을 지탱하고 있는데, 판테온은 그 중요한 위치에 있는 키스톤이 없고 천장이 뻥 뚫려 있다.



이 천장에서 쏟아지는 햇살은 이 공간을 더욱 성스럽고 아름답게 만든다. 마치 신이 강림할 때 내리는 빛처럼, 어두컴컴하고 서늘한 공간 안으로 들어오는 빛은 찬란하다.


로마인들의 총명함을 칭찬하며 판테온을 나서, 근처의 젤라또집에 들어갔다. 로마 3대 젤라또라고 불리는 지올리띠는 판테온의 옆 골목에 있었다. 나는 딸기맛과 파인애플맛을, 언니는 수박맛을 골랐다. 건강하고 신선한 과일맛이 입안을 가득채웠다. 인공적인 맛은 일체없고 과일의 순수한 맛으로 이루어진 이 맛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수박은 수박을 갈아만든 맛 그 자체였다.


젤라또를 먹으며 걷는 이탈리아의 골목은 황홀했다. 무슨 행사가 있는지 양복을 입고 지나치는 중년 아저씨들이 있었는데 마치 조지 클루니의 화보 같았다. 우리의 걸음은 트레비 분수로 향했다. 다시 로마에 돌아오기 위해서는 트레비 분수가 빠질 수 없다.



트레비 분수는 작은 분수가 아닌, 마치 하나의 벽 조각처럼 거대한 크기의 분수였다. 상아색의 조각들이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역시 유명 관광지답게, 가까이 다가서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악명높은 이탈리아답게 트레비 분수의 모든 곳곳에 경찰이 있었고, 삼 분에 한 번씩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소매치기를 조심하라는 뜻이다. 소리가 들리면 나는 재빠르게 가방을 부여 잡았다.


다시 방문한 낮의 스페인 계단은 사뭇 느낌이 달랐다. 자유분방한 유럽답게 사람들은 계단에 앉아 수다를 떨었다. 열렬한 이탈리아의 햇빛 덕에 우리도 한 템포 쉬어가기 위해 계단에 털썩 앉았다. 돌의 시원한 감촉이 얇은 옷가지를 뚫고 와닿았다.


낮의 스페인 계단은 활짝 핀 꽃들에 둘러쌓여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알록달록한 꽃들과 하얀빛, 주황빛의 건물들은 조화로웠다.



우리는 스페인 광장을 지나 나보나 광장까지 걸어갔다. 나보나 광장 가운데에 크게 걸린 삼성 광고를 반가워하고, 골목을 정처없이 걸었다. 투사이즈에서 티라미수도 사먹었다. 티라미수 마니아라 엄청 기대했는데, 특별한 맛은 아니었다.


한 숨 돌리기 위해 노상의 식당에 발닿는 대로 들어갔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늦은 식사 중이었고, 우리는 생맥주 두 잔과 감자 요리를 시켰다. 유럽인들은 감자를 정말 좋아한다더니, 맥주 안주로 아주 적당했다. 티라미수까지 풀코스를 즐기는 이탈리아인들과 눈이 마주쳐 눈인사를 주고 받았다. 바로 옆 좌석은 한 커플이 앉아있었다.


알 유 프롬 코리아? 커플 중 남자가 말을 걸었다. 그렇다고 대답했다. 동양인을 구분하는 서양인은 많이 없고, 그 중 코리아를 아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기대도 하지 않아 조금 놀라웠다.


그는 한국 드라마를 사랑한다고 했다. 정말로 많은 드라마를 알고 있었다. 오빠는 한국에서 정말 애교의 의미야? 사실 진짜 뜻은 older brother야. 라고 했더니 그가 당황했다. 뭐야, 귀여운 뜻이 아니었어?! 우리는 푸하하 웃었다.


나 주노 알아. 주노. 주노가 뭐지. 언니와 나는 서로 눈빛으로 물었지만 도통 뜻을 알 수가 없었다. What’s that mean? 그가 대답했다. The king.


그제서야 그가 말하는 게 ‘전하’였다는 걸 깨달았다. 뭐야, 사극 말투도 안다고? 그의 드라마에 대한 사랑이 존경스러웠다. 한참을 즐겁게 대화했고, 식사를 마친 그들이 먼저 자리를 떴다. 유쾌한 기억이었다.



그렇게 많은 곳을 돌아다녔는데, 아직 3시 밖에 되지 않았다니! 언니와 어디 갈 지 고민하다가 우리는 산탄젤로 성에 가기로 했다. 길을 걷다가 예쁜 아치를 발견해서 사진을 찍었는데, 기웃기웃하던 다른 관광객들도 줄을 서면서 우리가 다시 길을 떠날 때 즈음에는 긴 웨이팅이 생겼다. 재미있는 광경이었다.



산탄젤로 성은 한국어로는 성 천사의 성이다. 성에 귀여운 천사 조각이 있다. 나는 다리 앞 기념품 상점에서 귀여운 천사 조각을 하나 샀다. 다리 위에는 성인들의 동상이 있었고, 그들과 인사하며 다리를 건넜다.



로마를 가로지르는 테레베 강은 폭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아주 여유로웠다. 책을 읽는 사람, 산책하는 사람, 운동하는 사람 등 평화로운 생활을 구경하자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졌다. 산탄젤로 성을 열심히 걸으면 측면에서 성 베드로 성당이 인사를 하고 있다. 거대한 돔과 마주하고 감탄을 내뱉었다.



많은 관광지를 돌아다녔는데도 시간이 남아 조국의 제단으로 향했다. 조국의 제단의 풀네임은 비토리오 에마누엘 2세 기념관이다. 비토리오 에마누엘 2세는 이탈리아 왕국의 왕으로, 이탈리아의 통일을 이뤄낸 왕이다.

조국의 제단이라 불리는 이유는, 이곳에 불이 있기 때문이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이 불은 국보와 다름없어 군사들이 지키고 있다. 이 불이 꺼지면 로마가 멸망한다는 예언이 있다.


이 건물은 베네치아 광장 한 가운데에 어마어마한 규모를 차지하고 있다. 지은지 채 100년도 되지 않아 로마 사람들 사이에서는 젊은이로 불린다고 한다. 그러나 콜로세움을 가리고 있고 높이도 거대해 로마인들의 환영을 받지 못한다고 한다.



이 기념관에는 유료 전망대가 있으나 올라가지는 않았다. 테라스의 광경도 충분히 멋졌다. 기념관의 오른쪽 난간에서는 포로 로마노와 콜로세움이 보였다. 이만한 뷰도 무료로 볼 수 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긴 하루의 마지막 종착지는 바로 콜로세움이었다. 콜로세움 가는 길은 아주 평화롭고 사람이 적었다. 울창한 나무들이 큰 길을 따라 쭈욱 펼쳐져 있는데, 길이 아름다웠다. 길을 쫓다 보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이 반겨주었다.


나폴레옹은 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본 따 파리의 개선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섬세한 조각이 가득한 개선문을 구경하고 그 뒤로 시선을 옮기면 누구나 다 아는 이탈리아의 상징 콜로세움이 위풍당당하게 위치하고 있다.



오후의 비스듬한 햇빛을 받은 콜로세움은 더욱 황홀했다. 항상 부루마블에서만 보던 콜로세움을 직접 보다니. 이 벅참을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이름을 과장없이 수천 번은 듣고 말했을 텐데, 그 대상이 눈 앞에 있다는 것은 유럽에 처음 왔을 때 실감이 안난 것보다 더 큰 감동이었다.


우리가 열심히 사진 찍는 걸 본 어느 외국인이 일행을 두고 우리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일행들도 나란히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성심성의를 다해 사진을 찍어주고, 그도 만족하자 우리는 이게 코리안의 사진 실력이라며 함께 웃었다.


하루가 길었다. 거의 2만 보를 넘게 걸어 배가 고팠다. 언니가 전날 야경 투어 가이드에게 받아 온 식당을 가기로 했다. 콜로세움 바로 뒤에 있었다.


골목 어귀에 위치한 식당은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는 아마트리치아나와 카르보나라, 리몬첼로 두 잔을 시켰다. 리몬첼로가 뭔지 잘 몰랐던 우리는 레모네이드 비슷한 걸로 알았는데, 서버가 리몬첼로는 식후에 주겠다고 하는 것을 듣고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한바가지 나온 파스타는 하루 종일 굶은 우리의 입맛을 충족해주지 못했다. 맛보다도, 너무 짠 게 문제였다. 카르보나라에 들은 관찰레는 그냥 소금 덩어리였고, 면도 너무 짜서 물을 주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아마트리치아나가 덜 짜서 몇 입 먹다가 그마저도 포크를 놓게 만들었다.


리몬첼로가 술이라는 사실은 작게 나온 샛노란 잔을 보고 깨달았다. 게다가 아주 독했다. 술에 약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속이 뜨거워지는 느낌이었고, 묘하게 생강 맛이 나는데 그게 불호였다. 먹은 듯 먹지 않은 식사를 하고 우리는 미련 가득하게 식당을 나왔다.



집까지의 교통편이 애매해 다시 걷는 걸 택했다. 그 사이 로마에는 완전한 어둠이 내려앉았다. 집 가는 길에 있는 성당의 장식들이 아름답게 반짝였다. 낭만적인 야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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