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빌언덕
여권을 재발급받았다. 아무래도 올해 내 사주엔 역마살이 끼어있나 보다. 열아홉, 생애 첫 해외 연수로 태국에서 미아가 된 이후 완전히 겁쟁이가 되어버린 나는 그 뒤로 단 한 번도 국경 밖으로 발을 뗀 적이 없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어 난데없이 해외 일정이 세 개나 생겨버렸으니 말이다. 두 개는 확정, 한 개는 예정이다.
시국이 시국이니 요즘은 괜히 지도 앱을 켜 캄보디아까지 거리나 재보고 있다. 입국심사에서 “Are you carrying any drugs?(당신 불법 약물을 소지하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멍청하게 “Yes!”라고 대답해, 영문 모른 채 끌려가지 않도록 특히 유의해야겠다.
처음 손에 쥔 여권은 초록색 가죽 표지와 쉽게 구겨질 것 같은 연약한 종이 내지가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더니 초록색이던 것은 짙은 파란색으로 바뀌었고, 개인정보가 기록된 인적 사항 페이지에는 내장 칩이 들어가 종이보다는 단단한 카드 형태가 되었다. 어쩌면 여권도 강산의 일부였나 보다.
발급받는 시기도 훨씬 앞당겨졌다. 전에는 최소 2주는 기다려야 했던 것 같은데, 월요일에 신청해 수요일에 받았으니 이틀 걸린 셈이다. 역시 ‘빨리빨리’의 나라 대한민국답다.
나는 여권을 신청하던 날, 울컥 치미는 감정을 참아내기 위해 사력을 다했지만 결국 영문도 모를 담당 공무원 앞에서 멍청하게 펑펑 눈물을 쏟아내고 말았다. 며칠이 지나도 그 내상은 좀처럼 아물지 않아서, 끝내 그에게 묻고 말았다.
“오빠, 이제 나랑 헤어지고 나면 비상 연락망에 누구 적을 거야?”
“엄마 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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