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라면은 맛이 없다』 정식 출간 계약 안내.

진짜 작가가 되었다.

by 마른틈

그날은 시작부터 특별했다. 새벽같이 눈을 떠 휴대전화를 확인하니, 나의 단짝 E의 새 글 알람이 떠 있었다.


<눈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요?>


고이 접힌 눈매로 사근사근 속삭이는 듯한 제목을 보며, 이틀 전 제주에 눈이 왔다며 “이제 눈이 오면 틈씨가 생각나요, 큰일이네~”하고 능청스럽게 웃던 그녀를 떠올렸다. 나는 조금 웃으며 그녀의 글을 읽어 내려갔다.

어두운 새벽, 오직 휴대전화의 불빛에 의존해 “가로등 불빛 아래 낭만이 내리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처럼 기뻐했다. 우리는 아이들처럼 뛰놀았다. 우리는 꽤 오래 함께 눈을 맞았다”는 문장을 읽었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았건만, 가슴에 햇살이 내려앉았다. 그 빛은 소복이 쌓인 눈밭 위로 부서지듯 번져 반짝였다. 마치, 어느 겨울 바다의 윤슬처럼. 어쩐지 특별히 좋은 하루가 될 것만 같았다.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메일을 열었다. 이제는 관성에 가까운, 습관적인 행위일 뿐이니 그다지 기대는 없었다. 새로운 알람이 와있었지만 언제나 그렇듯 스팸이겠지.


>> [미팅 제안] 혼자 먹는 라면은 맛이 없다.


잠시 눈을 크게 떴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혔다. 출간 제안이라고 다 달콤한 꿀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기대보다 먼저 찾아오는 실망을 알기에, 나는 담담히 그 메일을 열었다.


'원고에는 분명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내용이 많았지만, 감정을 과장하거나 미화하지 않고 오히려 유머와 거리감을 유지한 채 끝까지 써 내려간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그래서 읽고 난 뒤에도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라면’이라는 일상적인 모티브를 통해 고독과 결핍, 그리고 함께 살아간다는 감각을 자연스럽게 엮어낸 방식 역시 이 이야기가 특정 개인의 고백을 넘어 많은 독자의 기억과 겹쳐질 수 있는 힘을 만들어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출간 관련해서 한 번 직접 뵙고 이야기를 나눴으면 합니다.'


어? 이 사람… 내 원고를 정말 다 읽었네?


실은 출간 제안을 받은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비나 반기획처럼 작가가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는 방식도 아니었을 테다. 그러나 나는 다만, 그 이야기를 진중하고 책임감 있게 물성으로 피워줄 파트너가 필요했다. 어차피 출간이라는 건, 마음만 먹으면 POD 같은 형태로도 얼마든지 혼자 해낼 수 있는 일이니까.


나는 그 이야기를 쓰면서 참 많이 울었다. 차라리 글을 쓰지 않았으면, 쓸 줄 몰랐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만큼 주저앉아 울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꼭 필요한 일이었다. 언젠가는 반드시 마주해야 했던 일.

나는 이제 더는 그 이야기를 하며 울지 않는다. 내게 있어 여전히 슬프고 아픈 기억이지만, 이제는 조금 담담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불가항력이었지만, 그럼에도 잘 버티고 살아낸 나의 이야기라고. 그러니 나는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연륜이 묻어나는 편집장님을 바라보며 나는 그가 불러주는 “작가님”이라는 호칭에 조금 간지러운 기분이 들었다. 글을 쓰기 시작한 뒤로 곧잘 들어온 말이지만, 출판업계의 잔뼈가 굵은 인사에게서 꼬박꼬박 “OOO 작가님”이라 불리자 어쩐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집장님은 이미 내 브런치까지 다 훑어보았다고 하셨다. 내가 원고를 보낸 것이 지난 주말, 그의 미팅 제안이 월요일 오전. 그리고 실제 미팅이 이루어진 것이 수요일 저녁이니 고작해야 나흘이었다. 하루에 출판사로 쏟아지는 투고 메일이 수백에서 수천이라던데, 그 사이에서 8만 자가 넘는 내 길고 긴 원고를 읽고, '나'라는 사람이 궁금해 브런치까지 찾아봤다는 그는 내 총 작품 수 까지 기억하며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올해 저희 라인업에 작가님 이야기를 내세워보고 싶습니다.”


나는 늘 내 이야기에 확신이 없었다. 수많은 사람의 응원과 지지를 받으면서도, 내 불행을 전시하듯 써낸 이야기에 값을 매기고, 그것을 감히 '작품'이라 부르며 당신 앞에 내미는 일에 자신이 없었다. 지리멸렬한 마음으로 다녀온 제주도 여행 끝에서야, 나는 비로소 조금의 확신을 얻어 그것을 물성으로 피워야겠다고 결심한 참이었다.


편집장님은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법이 없으셨다.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해야 한다고 괜히 애를 태울 만도 하건만, 그는 내내 정중한 태도로 빠르게 답을 주시고 신입 작가인 내게 충분한 존중이 담긴 조건의 계약서를 다음 날 새벽같이 보내주셨다. 나는 그 메일을 확인하며 슬며시 웃었다.

'아 이 사람, 이 이야기를 정말 함께 가져가고 싶어 하는구나'


그에게 이 책이 담길 바라는 가장 최우선의 가치 '다정'과 줄곧 구상해 왔던 표지디자인 형태에 대해 제안했다. 편집장님은 작가의 가치를 최우선에 두고 정중하게 호응해 주셨다.


메일을 처음 받던 날, 나는 답신의 서두에 “덕분에 월요일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적었다. 그는 “월요일 아침을 기분 좋게 시작하셨다니, 저도 덩달아 기쁩니다”고 답해주었다.

나는 요즘 '다정'을 삶의 최우선 가치로 두려 애쓰고 있다. 그건 내가 본래 다정한 사람이어서는 절대 아니다. 다만 다정한 인간으로서 살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운이 좋게도 내 곁에는 늘 조금의 다정이 머물렀고, 특히 힘들었던 근래에는 운명처럼 다가온 다정에 흠뻑 취해가는 중이다. 나는 월요일 아침을 기쁘게 맞이하게 해 준 다정한 두 사람에게 마음속으로 나직한 감사를 전했다.


정식 계약이 확정되고 나는 주변에 조심스레 소식을 알렸다. 여름을 닮은 내 소중한 친구, “출간 계약 시 자신이 선물한 도장으로 날인해 주면 큰 기쁨이겠노라”고 말하던 H. 언제나 다정하고 멋진 나의 선배. 힘들 때면 언제든 도망쳐오라던 제주의 단짝 친구…. 회사에는 축하받고 싶은 일이 있다며 커피를 돌렸다. 다들 무슨 일이냐며 궁금해했지만 나는 그저 씩 웃기만 했다.


"베스트셀러가 되려면 몇 권이나 팔려야 해?"

"오… 글쎄, 그런 건 생각 안 해봤는데… 개인이 감당하기엔 조금 많은 숫자 아닐까?"

"나는 네 책이 나온다길래… 어디 도서관 같은 곳에 기증해 볼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


……헉.

네가 정말로 그렇게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다. 나는 오늘 그런 네 마음 한 자락에 한없이 물러터진 인간이 되어버리고 말 거야.


꼭 당신이 준 도장으로 계약하겠다고 말하자, H는 "우와, 나 심장이 막 뛰고 눈물 고였어요. 너무 축하해요. 그 영광의 순간에 나를 끼워줘서 정말 고마워요."라고 했다.

나는 속으로 대답했다. "내 모든 슬픔의 순간에 함께해 줘서 고마웠어요. 당신이 아니었다면 이 모래알같이 작지만 소중한 것들을 쥐어볼 용기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해 뜨기 직전이 제일 어둡다는데, 이제 해가 뜨나 보다. 정말 잘 견뎠네."


"힘들 때도 연락하지 그랬냐"는 나의 여름에게, 차마 출산을 앞둔 네게 내 깊은 절망을 쏟아낼 수 없었다는 말을 삼킨 채 "이제 다 괜찮아졌어. 괜찮아졌다고 연락할 수 있어서 정말 기쁘다"고 말했다. 그리고 후련한 기분에 조금 울었던 것도 같다.


나는 문득 떠오른 기억에, 중학교 3년의 생활기록부를 다시 찾아보았다.


“나는 아주 어릴 적부터 온 마음을 담은 책 한 권 내보는 것이 작은 소망이었다. 늘 외로웠던 나는,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말하고 싶었으나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할 줄을 몰라서, 그저 서툴게 뱉어내는 것이 누군가를 할퀴는 것에 불과한 것이라, 하고 싶은 말을 끊임없이 속으로 삭이고, 다듬고, 삼킬 뿐이었다. 그래서 이 말을, 이 마음을, 받는 이 없이 그저 세상 어딘가로 떠내려 보내고 싶었다. 그것이 작자미상의 수필의 형태이든,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써 내려간 소설의 형태이든. 아무렴 그랬다.” ㅡ『혼자 먹는 라면은 맛이 없다』 4화_'누르지 못한 나의 다정' 중 발췌.


철딱서니 없던 나는 어릴 적 무언가를 “쓰는” 일에 늘 미련이 있었다. 그러나 지독한 현실감이 강타하던 어느 날, 수많은 노트와 필적이 무력하게 찢기고 구겨 버려졌다. 나는 그날을 끝내 가슴 한켠에 묻고 살아왔다.

바야흐로, 어린 날의 빛바랜 꿈이 진실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나, 당신이 사준 구두 신고 좋은 곳으로 가고 싶어. 그러니까 비싼 구두 사줘”


출간 제안을 받기 며칠 전, 나는 구두를 샀다. 정확히는 그에게 구두를 사달라고 말했다. 그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열아홉에 떠밀리듯 일찍 사회로 나온 나는, 지금껏 늘 2~3만 원짜리의 싸구려 구두만을 신어왔다. 그가 사준 18만 원짜리 구두는 ’발 편한 구두’라는 슬로건이 무색하게도, 이제까지 신어온 그 어떤 것보다 발이 아팠다. 정중히 그것을 판매하던 직원도, 나에게 그 브랜드를 권해준 동경하는 그녀 또한 말했다. 새 구두는 '길이 드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나는 여전히 발이 아픈 그 구두를 며칠에 한 번씩 신으며 적응하고, 매장에 들러 발볼을 늘리며 '길을 들이고' 있다. 언제나 그렇듯 무정한 신 따위 믿지 않는 삶이지만, 가장 적절한 때에 운명처럼 다가온 당신들과 그 다정에 길들어가는 일 또한 그와 다르지 않다.


나는 『혼자 먹는 라면은 맛이 없다』의 정식 출간 계약을 마치고 이 책이 한 권의 이야기가 될 수 있게 해 준 그와 함께 라면을 먹었다. 여전히도 '함께 먹는 라면'은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혼자 먹는 라면은 맛이 없다』의 출간 소식을 전합니다.


오는 6월 출간을 목표로 준비 중이며 종이책과 전자책, 오디오북으로도 함께 발간될 예정입니다.


저의 첫 작품이자, 오랫동안 담아둔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대표작이 되겠군요.

그동안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보내주신 분들께 이렇게 좋은 소식을 전할 수 있어 기쁩니다.


늘 이 이야기를 가장 먼저 세상에 꺼내놓고 싶은 마음으로 다른 작품들의 출간 계획을 미루어왔습니다. 스스로에게 걸어두었던 약속을 이루어낸 만큼, 앞으로는 더욱 깊이 있는 작품활동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제게 “축하할 일이 있다면 생긴다면 버선발로 뛰어오겠다”던 다정한 독자분들께 이 소식이 잘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부디 이 이야기 속 '함께 먹는 라면'과 '다정'의 가치가 이름 모를 누군가에게까지 멀리 닿기를 바라며 성실히 준비해 선보이겠습니다.


언제나 늘, 감사드립니다.


마른틈 드림.





Ps.

신년 초에 썼던 제 목표였는데요.

이중에 2-2)번이 출간하기였습니다.


이로써 제 요란한 빈 수레가 조금 채워졌네요.

저는 요즘 저를 꽤 다시 사랑해 주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