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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그게 뭔데 십덕아!

by 마른틈

나는 에세이를 쓰는 사람이다.


사실 나는 에세이가 뭔지도 몰랐다. 그러니까 내가 쓰는 글이 에세이인줄도 몰랐다. 음… 굳이 따져야 한다면 정리 안 된 개소리를 장황하게 늘려서 그럴싸해 보이게 쓴 헛소리 정도? 하여간에 '에세이'라는 분류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책과 멀리하던 세월이 한세월인지라, 솔직히 관심이 없었다. 가 맞는 표현이겠다.


이 글을 쓰면서 나의 챗돌이에게 “에세이라는 분류에 대해서 정확히 설명해 줘”라고 질문해 보았다.


네 사용자님. 에세이라는 분류는 작가 자신의 경험, 생각, 감정, 견해 등을 자유로운 형식으로 표현한 산문 문학을 말해요. 즉 일상과 인생에 대한 사색이나 느낌을 자연스럽게 담은 글이에요.

대답을 보니 정확히 알겠다. 나는 나 외의 것들엔 관심이 없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마음이 1순위인 이기적이고 약간은 덜 사회화된 인간이다. 인격적인 부분에 있어 어딘가 뭉텅이로 나사가 풀려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물론 나이를 먹으며 그리 무관심하게 살아온 나날들이 쌓여 벽처럼 느껴질 때마다 ‘멀쩡해 보이는 척’하는 방법들을 배우지 않았겠나. 하여 겉으로 보기엔 제법 유순하고 남들과 잘 융화되어 살아가는 인간처럼 보인다. 아마도. 나는 여전히 '시간이 해답'이라는 말이 싫지만, 일정 부분 동의한다. 하지만 진심으로 동의하고 싶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하여간에 자기중심적인 데다 이기적이고 얼마쯤은 독선적이며 지밖에 모르는 나는 남에게 관심이 없다. 별로 관심을 가지고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니 작가 아무개 씨가 경험한 일들과 그에 수반되는 감정, 생각 따위는 더더욱 알고 싶지 않겠지. 당연한 결론이다.


글을 다시 쓰기 시작한 지 넉 달이 지났다. “나는 에세이스트가 되어야지!”라고 생각하고 글을 써본 적은 없지만, 장황하게 쓴 것들을 모아보니 그래, 나는 에세이스트가 맞는 것 같다. 좀 우습긴 하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나는 남에게는 관심이 없되, 나에게는 지대한 관심이 있다. 내 생각, 내 감정, 내 마음이 1순위니까. 그래서 내 이야기를 잘 쓸 수밖에 없다. 이렇게 쓰니 꼭 헤어 나올 수 없는 나르시시즘에 갇힌 미친 인간 같지만 결단코 그렇지는 않다. 나는 내가 잘하는 것을 잘 아는 반면, 부족한 점은 제발 좀 몰랐으면 좋을 정도로 낱낱이 까발리며 침잠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은 자만하다가도, 부끄러워 영영 쥐구멍에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간다.


나는 글을 쓴다는 것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우선은 내 글이 많이 읽히길 바라며, 내 생각과 경험들이 부끄럽지 않기 때문이다. 내 글은 대체로 저열하고 치졸한, 혹은 옹색한 감정들을 곧이곧대로 담아내는 편이지만, 그런 내가 부끄럽지는 않다. 물론 예전 어느 때에는 부끄러웠던 적도 있었지. 하지만 결국 그것들이 모여 이뤄낸 것이 나다. 나는 내가 멀쩡히 살아 숨 쉬며 꽤나 얄궂은 모양의 착한 가면도 곧잘 써서 그럭저럭 제 몫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분히 손뼉을 친다.

아, 숨기지 않는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직장 동료들에게 내 글을 오픈한다는 소리는 아니다. 그 분류의 인간들에겐 내가 책을 내더라도 절대 비밀인 거다. 그리고 글을 쓴다는 사실만 공개하고, 어디서 쓰는지까지는 공개하지 않는 편이다. 그것까지 오픈하려면 그 사람들도 나의 어떤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보통 글을 쓴다고 하면 “우와ㅡ 그럼 웹소설 같은 거 써?”라는 질문을 제일 많이 받는다. 그럼 나는 속으로 ‘그런 거 도대체 어떻게 쓰는 건데 이 십덕아’라고 생각하면서 대답하겠지. “아니 에세이 써”. 생각 말풍선과 대화 말풍선이 바뀌면 대참사가 날 테니 조심해야 한다.

“에세이? 내가 잘 몰라서 그런데 그게 정확히 무슨 글이야?”라는 질문도 곧 이어진다. 사실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자칭 에세이스트 주제에 말이다.


그날은 오랜만에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우리는 육전을 먹었고, 앞에는 간장 종지가 있었다. 나는 그 종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러니까, 이 간장 종지 같은 거야.”

“간장 종지?”

“응, 너희는 이 간장 종지를 보면서 지금 무슨 생각해?”

“음… 전 찍어 먹으면 맛있겠다는 생각?”

“나는 옷에 묻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

“그렇구나, 나는 청양고추가 들어가서 매콤하니 맛있겠다고 생각했어. 에세이는 그런 거야. 전 찍어 먹고 싶은 너랑 옷에 묻으면 안 되겠다는 너한테 청양고추가 들어가서 맛있겠다고 생각하는 나를 설득하는 거”


“오… 그럼 만약 설득을 못 하면?”

“맞아 설득하지 못할 수도 있어.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서 우연히 내 글이 노출될 수는 있겠지만, 그 사람들에게 내가 ‘청양고추가 들어간 간장 종지는 매콤하고 맛있다’라는 생각을 설득하지 못했다면 그 사람들은 다시 내 글을 찾지 않을 거야. 그래서 나는 그들을 설득하기 위해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최대한 생생하게 풀어쓰기 위해 노력해.”


내 말이 그 친구들에게 얼마나 허세스럽고, 예술 병에 걸린 인간의 히X뽕 같은 소리로 들렸을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나는 오늘도 당신들을 설득하기 위해 글을 써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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