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e Memory와 빙하 장례식, 기록과 애도가 만나는 자리
빙하는 바다에서 증발한 수증기가 육지에 눈으로 내려 쌓이고 다져져 만들어진다. 언젠가 녹으면 대부분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바다가 먼저일까, 빙하가 먼저일까?
물은 순환한다. 출발지도 종착지도 없는 순환 속에서 둘의 순서는 큰 의미가 없다. 다만 지구 물의 97%가 바다에 있으니, 편의상 바다를 물의 고향이라 불러도 무리는 아니다.
바다를 떠난 모든 수증기가 빙하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극지방까지 도달하는 것은 극히 일부다. 대부분은 그 전에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비나 눈으로 변해 바다로 돌아간다. 즉 빙하는 험난한 여정을 완주한 물의 결정체, 그 자체로 긴 기억을 품은 존재다.
눈송이가 내리고 다져지면서 그 시절 공기, 함께 부유하던 먼지, 화산재, 심지어 미생물까지 한 얼음에 갇힌다. 각 얼음은 저마다 다른 시대의 이야기를 담는다. 어떤 것은 오늘, 어떤 것은 백만 년 전의 눈이다.
연구자들은 빙하를 수직으로 뚫어 원통형 얼음 기둥, '빙하코어(Ice core)’를 뽑아 올린다. 그 안에는 지구의 시간이 층층이 새겨져 있다. 우리는 그 기록을 통해 과거의 대기와 기후를 읽어내며 지구의 역사를 이해한다.
‘기억 소멸’은 죽음과 사후세계를 다룬 판타지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이다. 강을 건너거나 문을 지나거나 특별한 물을 마시는 순간 살아 있을 때의 기억을 잃는 장면 말이다.
빙하의 운명도 이와 닮았다. 빙하는 언젠가는 바다로 돌아간다. 녹아 흘러내리거나 바다와 맞닿는 순간, 얼음 속 오래된 기억은 물로 흩어져 사라진다. 빙하에게 바다는 기억 소멸의 장소다.
기후변화로 이 과정이 가속화되며, 오래된 기억의 조각들이 빠르게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 해수면 상승이 빙하의 소멸의 가장 큰 위협으로 알려져 있지만, 연구자의 눈에는 또 다른 상실이 겹쳐진다. 빙하에게서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들이 함께 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 상실 앞에서 과학자들은 새로운 시도를 시작했다. 바로 Ice Memory 프로젝트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연구자들이 주도하고, 유네스코(UNESCO)가 지원하는 이 국제 프로젝트는 사라져가는 산악 빙하에서 빙하코어를 채취해 남극 콘코르디아(Concordia) 기지의 저장고에 보관한다. 지금 당장은 분석하지 않는다. 수십 년, 수백 년 뒤 더 발전된 기술을 가진 미래 세대가 꺼내어 읽을 수 있도록, 인류의 공동 아카이브로 남기는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면서 동시에 문화다. 나무의 나이테나 고고학 유물이 인류의 문화유산으로 보호되듯, 빙하 또한 “인류의 기억을 지탱하는 유산”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사라지는 빙하 앞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방식을 택했다. 애도와 의례다.
2019년, 아이슬란드의 오크 빙하(Okjökull)는 공식적으로 “죽은 빙하”로 선언되었다. 주민들과 연구자들은 함께 모여 장례식을 치렀다. 추모비 동판에는 이산화탄소 농도 415 ppm와 함께 이렇게 새겨졌다.
“이 빙하는 모든 빙하 중 첫 번째로 사라졌다. 앞으로 200년 안에 모든 빙하가 같은 길을 갈 수 있다.”
같은 해 스위스 알프스의 피츠올(Pizol) 빙하에서도 장례식이 열렸다. 과학자, 시민, 활동가들이 모여 빙하의 마지막을 애도했다. 빙하는 생존의 기반이자 공동체의 정체성이었고, 그 상실은 삶의 토대를 잃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빙하 없는 나라에 사는 우리에게 이런 의례는 낯설다. 그러나 빙하와 함께 살아온 이들에게, 그것은 풍경이 아니라 삶과 문화, 기억의 주체였다. 따라서 장례는 곧 공동체가 자신들의 역사를 애도하는 방식이었다. 국보 1호가 불터던 날 우리가 느꼈던 감정과 비슷할까?
기록과 애도 사이에, 또 다른 방식의 대응도 있다. 스위스 알프스에서는 여름이 오면 빙하에 거대한 흰 담요를 덮어준다. 햇빛을 반사해 녹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필사적 시도다. 꺼져가는 숨을 간신히 붙잡고 있는 환자에게 씌운 인공호흡기를 닮아, 보는 이들에게 희망보다 애처로움을 안긴다.
하얀 담요 아래서 빙하는 죽음을 유예받고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힘으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어쩌면 이것은 가장 과학적인 방식처럼 보이지만, 가장 절박한 감정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빙하는 수십만 년의 기억을 품은 채 사라져가고 있다. 과학은 그들의 마지막 유언을 채록하고, 문화는 그들의 장례를 치른다.
미래의 누군가는 우리의 흔적을 읽게 될 것이다. 그것이 얼음 속에서일지, 혹은 차갑게 남은 동판 위에서일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이 읽게 될 문장의 내용은 지금 우리가 결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