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의 MBTI까지 내가 알아야하나~
75년생, 수능 1세대로 두 번의 시험을 치러야 했고 바뀐 교육과정 덕에 주관식 시험문제가 처음으로 출제되었고 논술 시험을 하느니 마느니 기로에 섰던 그때~ 뭔가 인생이 살짝 꼬이는 듯한 느낌이 들었던 건 기우만은 아니었던 거 같다. 나름 장학생으로 대학에 입학했으나 IMF 외환위기로 인해 졸업을 해도 취업이 마땅히 되지 않았다. 동기들을 취업 대신에 대학원 진학 또는 취집(취직 대신 시집)으로 현실을 도피하는 이도 있었다.
커피숖이나 레스토랑 아르바이트는 하늘에 별따기였고, 주유소 아르바이트, 리서치 콜센터 아르바이트, 보험회사 모집원 아르바이트(당시 한 달 출근도장을 찍고 시험까지 치면 30만 원을 주었다, 하지만, 어린 나이라는 이유로 한 달이 지날 무렵 중국산 36 pcs 접시를 받고 눈물을 삼켰다)등 남들이 굳이 하지 않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생활고를 해결했다.
수석 졸업이었지만 불경기 탓에 학과 관련 직종 취업은 쉬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017.018. SK텔레콤 콜센터 상담원이나 채권 추심회사 취업을 위한 헤드헌트사들이 판을 치던 그 당시,
나의 에너지, 피와 땀의 대가 중 각종 세금과 헤드헌트사의 수수료(15~30%)가 공제되면 통장 잔고는 매월 고만고만했다. 초과 근무나 휴일 근무에도 대가를 청구할 수 없었고 '열정페이'라는 이름으로 '청춘인데 배움의 대가를 어찌 가격으로 메길 수 있냐~'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개인의 손해는 너무나 당연시되었다.
한 달 세금공제 후 76만 원, 새벽 2시까지 일하고 퇴근 후 아침 7시에 다시 출근.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미련했던 나 자신에 대한 자책을 한다.
당시 존경했던 상사가 '월급 받는 만큼 일하려는 생각을 하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렇지, 이건 나를 위한 미래의 투자이니 참아야 한다, 힘들어도 견뎌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대상포진에 걸려 입원을 권고 받았어도 묵묵히 출근을 했다.
그렇게 몸에 밴 습관처럼 내가 좀 손해 보고 타인의 시선을 먼저 신경 쓰고,
상대를 배려해야 하는 사회적 덕목을 고집스레 지키며 25년간의 직장생활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몇 년 전부터 MZ세대가 자기의 소신과 개인의 행복추구가 먼저로 신인류 같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게 되었다.
사실 '나 때는'세대인 나로서 이들의 행동이 눈살 찌푸려지기도 하지만 속으로는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걸요, 제가요, 왜요?' 어찌 감히 이런 말을 내뱉을 수가 있는가?
시키지 않은 일조차 찾아서 미리 해두어야 했고 니일 내일 구분해서 하면 이기적인 인간으로 공동생활인 직장에서 공공의 적이 될 수도 있는 그런 세대에 살았던 나로서는 감히 상상도 못 할 말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업무분장에서 정확한 문구로 지정된 일만을 하고 그 일로 파장되는 추가적인 일을 본인 업무가 아닌 걸로 인지한다. 결국 답답한 사람이 우물을 파게 되고, 선임들 조차 그들의 눈치를 보게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근 나도익숙지 않지만 MZ가 되어보기로 했었다.
업무분장상 내일이 아니었기에 눈을 감았고, 당연하게 행동해 보았다.
별일 아닌 일이었기에 별일 아니게 대응했다.
동료의 싸늘한 행동과 메신저로 휘갈겨지는 타자소리에 '아, 나는 공공의 적이 되는구나'를 알 수 있었다.
남들은 항상 무관심했는데, 겨우 3분 무관심했던 내 행동은 동료의 '무리지음 만들기'로 일주일 내내 나를 괴롭혔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데 내가 그걸 잊었다.
나의 얕은 순간의 무관심함을 사과하고 나서야 살벌했던 분위기는 잦아들었다.
오늘도 나는 MZ가 되어보겠다는 마음을 접고 3개월을 당겨 일하고 사서걱정하는 캐릭터로 동료의 눈치를 보며 일을 하고 있다.
오후 6시에 눈치 보지 않고 퇴근하는 그들이 역시나 부러운 지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