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이라는 공간, 그리고 나의 자리
하루에 하나씩, 이야기를 적기 시작한 지 어느덧 열다섯 번째가 되었다.
글을 쓰기로 마음먹었을 땐, 이 일이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사실 잘 몰랐다. 하루하루를 무사히 보내는 것만으로도 벅찼던 시기에, 조금 무모하고 낯선 선택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론, 할 수 있는 유일한 것 같기도 했다. 누구에게 쉽게 털어놓을 수 없었던 이야기,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려웠던 감정들이 있었기에 글로 적기로 했다. 말 대신 문장을 택한 셈이었다.
그동안 써온 이야기들은 대부분 병원이라는 공간 안에서 있었던 일들이었다. 나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고, 지금도 병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떠나보내는 곳, 그리고 자신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애써야 했던 곳. 자연스럽게 병원은 내 이야기가 시작되는 장소가 되었고, 그 안에서 벌어졌던 일들을 토대로 글이 만들어졌다.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내가 쓴 글이 내부 고발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조직의 문제를 꺼내고, 말하기 어려운 현실을 다루었으니 그런 시선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 이 글들은 어떤 고발이 아니라, 그저 기록이었다. 나는 누군가를 탓하려고 쓴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의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썼다. 그 순간의 눌렀던 감정, 설명되지 못한 오해들. 그것들을 꺼내어 놓음으로써 비로소 자신을 다독일 수 있었다.
병원에서의 시간은 단순히 고되고 힘든 것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 좋은 기억이 있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았다. 여전히 마음 깊이 감사한 동료가 있고, 함께 웃을 수 있었던 환자들도 있다. 나는 그 모든 것을 기억한다.
다만, 인간의 기억이 것이 대개 그렇듯, 아팠던 장면이 더 선명하게 남아버리는 탓에 그런 이야기들이 먼저 쓰였던 것 같다.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회복을 위한 과정이었고, 내 마음을 정리하는 방식이었다.
글을 쓰면서 나를 가장 많이 돌아보게 했던 주제 중 하나는 '이타적 이기심'에 관한 것이었다.
나를 아끼고 지키는 일이 때로는 다른 사람을 위해 헌신하는 것보다 더 어렵게 느껴졌던 시간들. 나는 일하면서 대부분 타인을 먼저 생각했고, 갈등을 피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내가 나를 아끼지 않으면 남을 위해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 깨달음은 꽤나 오래 걸렸지만, 그래서 더 의미 있었다.
이타적 이기심이라는 말은 다소 낯설고 모순처럼 들릴 수 있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가장 현실적인 감정이었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나를 먼저 챙기는 선택이 필요했다.
글을 쓰는 시간은 내 감정의 결을 들여다보는 일이기도 했다. 조용히 감당하는 사람의 방식으로 살아온 나는 갈등을 말로 표현하기보다 내면에 쌓아두곤 했다.
말하는 사람의 자리에 선다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일이었다. 말한 후에 마주쳐야 하는 반응들, 혹은 아무 반응도 없는 침묵이 오히려 더 무거웠다. 그래서 나는 말하는 사람이 되기보다 쓰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글은 나에게 방패이자 창이었고, 벽이자 문이었다. 말로는 하지 못한 것을 글로는 할 수 있었다. 나는 그렇게 나를 지키면서, 조금씩 나를 표현하는 법을 배워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갈수록 고민이 깊어졌다. 계속해서 병원 이야기를 써도 될까? 내 글이 너무 한정된 공간 안에서만 맴도는 건 아닐까? 간호사라는 직업이 내 글의 색깔을 너무 규정지어 버리는 건 아닐까?
나는 병원밖에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
물론 내가 지금까지 써온 글들이 무의미하다는 건 아니다. 그 시간은 분명 소중했고, 내게 꼭 필요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싶다. 병원이 아닌 다른 삶의 장면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들,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앞으로 나는 조금 더 보편적인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볼 생각이다. 관계에 대한 이야기, 감정의 흐름에 대한 이야기, 또는 작지만 따뜻했던 일상의 한 장면들. 꼭 간호사로서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내가 겪은 감정은 많은 이들과 이어져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사람들이 좀 더 읽기 쉽고,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쓰고 싶다.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나도 그래”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여전히 나를 표현하는 게 서툴고, 어떤 이야기는 여전히 조심스럽지만, 그래도 이전보다 한 발짝 더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다.
"나는 왜 이 글들을 써왔는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지, 무엇에 화가 났고 힘들었는지 적어두지 않으면 어느 순간 잊어버릴 것 같았다. 그래서 기록했다.
지금까지 글을 적으면서, 어쩌면 조금 더 진심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 같다. 말로는 아직도 서툴지만, 글로는 조금씩 전할 수 있게 되었다.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시선을 배운 것 같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게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감정의 이름을 불러주는 글을 쓰고 싶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마음,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너무 작아서 무시당했던 감정들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하나씩 이름 붙여주고 싶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느낄 수 있는 그런 글을 써보고 싶다.
이야기를 적는다는 건 결국,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이다. 나는 이제 조금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게 되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이 조용한 목소리가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서 그 사람도 자기만의 언어를 찾아 떠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 말하지 못하는 순간에 끝내 꺼내지 못한 감정이 있을지라도, 나는 계속해서 써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