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와 많이 컸다라는 호들갑에 엄만 모르는 소리 말라는 듯 대꾸도 않더니 저 한 마디로 적막을 뚫는다.
빤딱하니 자란 고추잎 사이에서 그보다 퍼석한 진녹색의 줄기가 안 그래도 눈에 걸리는데,
머얼찍하게 자란 요 방울토마토는 약간의 과장이 허락된다면 정말 나무라도 될 양이다.
"왜 이리 크게 자랐대"
괜시리 꺼내본 말이 어쩌다 타박처럼 들린건지
"해가 안 드니 그렇지 머"
툭 뱉고는 엄만 가게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작은 동네이발소 뒷켠, 여기저기서 가져온 흙을 시멘트바닥 위에 켜켜이 채워 만든 엄마의 텃밭은
초록의 무언가 위에선 고작 맥주나 떠올리는 도시의 '앨리스'에겐 '이상한 나라'나 다름없다.
호박잎과 고춧잎, 고구마순들이 자라는 초록색 이상한 나라.
엄만 심고 물주면 된다지만 가지런한 이랑, 그 위에 까만 비닐까지 곱게 씌워놓는 걸 보니
그것만 해선 다가 아닌 것은 농사의 니은자도 모르는 내가 봐도 알겠다.
어디갔나 싶으면 어느새 밭에 나가있는 게 요즘 엄마의 사는 재미는 아무래도 다 키워논 자식놈들보다 요놈들인 게 틀림없지만, 바지런히 누비던 엄마가 이내 허리를 세워 뒷짐을 지곤 방금보단 투박해진 표정으로 꽤 한참 서있다.
자식농사를 하면서도 꼭 하나씩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더니,
늘그막에 마음이 쓰이는 손가락이 요 방울토마토인 듯 하다.
텃밭이 담장 바로 아래 자리하는 바람에,
한쪽 구석 자리 홀로 자란 방울토마토 위로 담장에서 떨어진 그늘이 짙게 덮어져 있다.
값어치가 되는 고추들에 줄줄이 밀려
없는 것보다는 나은 대접이나 받고 있는 모양인데 우둘투둘 모나게 자란 이파리에서 티가 난다.
햇빛도 잘 들지 않는 구석에서 그래도 꿋꿋이 잘자랐네 라는 기특한 눈빛을 보내던 찰나,
퍼런 줄기들 사이에서 연두빛 구슬같은 조그마한 열매 하나가 보인다.
신기한 마음에 억센 줄기를 이리 저리 휘저으며 봐도 다른 구슬은 어째 잘 보이지가 않는다.
나도 모르게 기특함을 거두고는
"키만 컸네"
엄마가 했던 말을 기어이 하고 만다.
이성이라는 아주 날카로운 송곳을 가진 그는
현실라는 종이를 숨막히게 뚫어버리고
그것을 쥔 채 그 뒤에 숨은 듯 서있던 나의 살갗마저 찔렀다.
아니 눈 앞에서 멈춘 송곳의 촉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곤 찔렸다며 엄살을 떤 게 나라면 하는 수 없지만,
그럼에도 굳이 그리 날카롭게 촉을 세워야 하는 저의를 도저히 이해하기 힘듦에는 여지가 없었다.
한번은 괜히 눈시울을 멋쩍게 비벼대며 하소연을 내어놓자 그 송곳은 잠시 촉을 접고 복잡해진 눈으로 허공을 한 번 본 뒤 말을 꺼냈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불안한 감정과 인정에 대한 집착이 아버지가 아닌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고스란히 이어져 알게 모르게 다른 이들에게 상처를 많이 준 것 같다는,
진심이 그 무게를 더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 구석진 곳에서 햇빛 좀 받아보겠다고 더 위로, 위로만 자라나야 했던 시퍼런 줄기 앞에서 송곳스러운 그가 떠올랐던 건,
사랑을 쬐지 못한 기억 속에서 그 사랑이라는 순간에 좀 더 닿기 위해 마음의 바깥, 바깥으로만 고집스럽게 줄기를 뻗어내야 했던 모습이 어쩐지 닮아있기 때문인 듯 싶다.
그 이야기의 무게가 감정을 가라앉힌 탓인지
그제서야 날카로움 속에서 언뜻언뜻 느꼈던 호의들이,
방울토마토에 달린 몇 안되는 열매만큼, 딱 그만큼만 떠오른다.
생각해보니 그늘에서 그 열매 몇 개 맺어낸 것도 용하다고 할 일인데,
멀찍하게 키만 컸다는 억울한 핀잔만 해댄 건 아닌가 했다.
저 안쪽 깊숙한 곳에 겨우 달린 열매는 볼 생각도 않는 주변 이들의 볼멘소리에
억센 고집의 키만 키웠을 그 송곳의 촉에 무서움이 아닌 안쓰러움이 앞선 건 그 때,
그 때가 처음이었다.
어느 날 아침, 식탁에 올라온 뻘건 방울토마토 딱 두 개가 유난히 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