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즉통(窮卽通)이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곤 한다.
첫째, 부모님이 능력이 없어서 (혹은 집안이 가난하기 해서)
둘째, 시댁 또는 처갓집이 못 살아서 (즉 배우자가 가난해서)
셋째, 사회구조가 불평등해서 (무전유죄, 유전무죄)
넷째, 월급이 쥐꼬리 만해서 (또는 학연, 지연이 없어서)
그리고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와 같은 세태를 반영이라도 하는 듯, '헬조선', '탈조선', 'N포 세대' 등 온갖 자조론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특히 그중에서도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변되는 '수저 계급론'은 자조론의 극치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사회가 수저 계급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부모의 출생 신분과 경제력에 의해 우리의 삶이 결정된다고 한다면, 막말로 우리는 좆이 빠지게 일하며 아등바등 살아갈 필요가 없다. 제아무리 노력한다 한들 결국 시궁창 같은 인생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체 그 내용만으로도 삶의 의지를 꺾는, 이와 같은 자조론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시작된 것일까?
사실 필자는 그 출처에 대해 궁금하지도 않을 뿐더러 관심은 더더욱 없다. 어차피 패배주의에 젖어 남아도는 시간을 주체할 줄 모르는 인사들의 푸념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당신이 부자가 되길 희망하고 성공을 거머쥐기 위해 달려가고 있다고 한다면, 행여 그 어떤 장해물이 당신의 앞길을 가로막고 서 있다고 할 지라도, 한낱 넋두리에 불가한 자조론에 동조하여서는 안된다. 시름과 한탄 그리고 불평과 불만은 뒷담화와 같아서 내뱉으면 그 순간만 가슴이 후련해질 뿐, 그 어떤 경우에도 그것이 당신의 고민과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못한다. 따라서 예로부터 현명한 사람은 '궁즉통(窮卽通)'의 정신으로 근심과 걱정을 타개해 나갔다. 그렇다면 그 궁즉통의 정신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이는 공자가 즐겨 읽었다는 『주역』이라는 책에서 유래한다. 그리고 그 실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궁즉변(窮卽變)', 궁하면 변할 것이요,
'변즉통(變卽通)', 변하면 통할 것이니,
'통즉구(通卽久)', 통하면 오래간다. (혹은 영원하다.)
결국 궁즉통의 정신이란 쉽게 말해, '안되면 되게 하라!'는 대한민국 특전사의 정신이요, 고 정주영 회장(현대 그룹 창업주)이 평소 입버릇처럼 내뱉던 '이봐 해봤어?'라는 말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안되면 되게 하라!' 또는 '이봐 해봤어?'라는 말은, 그 어감이 마치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라도 씹어!"라고 아랫사람에게 호통치는 윗사람의 모습과도 같아 언 듯 꼰대의 말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그 말을 곱씹어 해석하면, 어떤 일을 포기하고 체념하기에 앞서 어떻게 하면 '그 일을 가능케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야 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자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는 열쇠임을 시사한다. 그럼 여기서 잠시 한 편의 이야기를 통해 그 예를 살펴보자.
옛날 하고, 그리 멀지 않은 옛날―
지식에 대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여행에 나선 노스승과 제자가 있었다. 우연한 만남의 대한 중요성에 대해 서로 문답을 주고받으며, 그렇게 길을 걷던 두 사람은 그 발걸음이 어느새 한 농가에 다다르게 되었다.
따뜻한 햇살과 포근한 바람을 품에 안은 드넓고 기름진 땅. 그곳은 어느 누가 보더라도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최적의 요건을 갖춘 땅이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 땅은 무성하게 자란 잡초와 널브러진 쓰레기 더미로 인해 황무지나 다름없었다.
"선생님, 보십시오. 이 땅은 마치 제 아무리 값진 다이아몬드라고 할지라도 그 가치를 모르는 사람이 소유한다면, 그 다이아몬드는 한낱 돌멩이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제자의 말에 늙은 스승은 고개를 저으며,
"결과만 보고 판단하기에 앞서 무엇이 그와 같은 결과를 이끌었는지 그 원인을 찾는 것이 중요한 법이라네."
라고 말하고는 낡은 농가의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누더기와 다름없는 옷을 입은 부부가 두 사람을 맞았다.
"이 곳에는 상점이라고는 당체 보이지가 않군요. 두 분은 어떻게 살림을 꾸려가십니까?"
스승의 뜬금없는 물음에 남편으로 보이는 이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참을 훑어보고선 입을 열었다.
"우리에겐 젖소가 한 마리 있소. 그 젖소는 매일 우리가 마시고도 남을 양의 우유를 만들어 낸다오. 그래서 남은 우유 치즈나 버터를 만들어 인근 도시로 나가서 팔거나 다른 먹거리로 바꿔 생활한다오."
남편의 이야기가 끝나자 스승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제자를 불러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오늘 밤 저 집의 젖소를 은밀히 끌고 와 저기 보이는 저 절벽 아래로 떨어뜨리거라."
"하, 하지만 스승님! 젖소는 저들의 유일한……."
갑작스러운 스승의 말에 제자는 당황하여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감히 스승의 명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사업가로 크게 성공한 제자는 지난 일에 대해 용서를 구하기 위해 다시금 그 농가를 찾았다. 하지만 대체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황폐하기 그지없던 옛 모습은 어디 갔는지 아름답게 가꿔진 정원에서 아이들은 꽃과 나비를 쫒아 뛰어놀고, 농장에는 온갖 곡식과 열매가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제자는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해 급히 주인을 찾았다. 그러자 주인이 말했다.
"옛날, 저희 집에는 젖소가 한 마리 있었죠. 하지만 어느 날 갑자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고 말았습니다. 가족의 유일한 생계수단이었던 젖소가 죽자, 저는 어떻게든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허브와 채소를 심었죠. 하지만 씨을 뿌렸다고 하여 그것들이 잭의 콩나무처럼 하루아침에 자라는 것은 아니었죠. 그래서 숲의 나무를 잘라 내다 팔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나무를 심지 않고 마냥 베어내기만 할 수는 없었습니다. 하여 묘목으로 쓸 어린 가지를 구입해 나무를 심었습니다. 그랬더니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새 옷을 만들어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면화도 심게 된 것이죠. 어쨌든 그렇게 힘든 일 년을 보내고 수확을 맞았습니다. 채소와 면화는 온 가족이 풍족하게 쓰고도 남아, 그것들을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게 되었죠."
주인의 뺨에는 봄처럼 따뜻한 눈물이 흘렀다. 그리고 그 눈물과 함께 가슴속 깊이 아껴 두었던 말 쏟아냈다.
"이곳에서 이 모든 일들을 할 수 있으리라고는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젖소가 절벽으로 떨어지기 전까지는……."
결국 부자가 되는 첫 번째 열쇠는 '궁즉변의 정신'에 있다. 그러나 궁즉변의 정신을 갖추기 위해서는 강인한 정신력이 필요하다.
물려받은 재산이 없다는 이유가, 월급이 적다는 이유가, 그리고 사회구조가 평등하지 못하다는 이유가, 결코 부자가 될 수 없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진짜 이유는 부자가 되기 위해 고민 조차 해 보지 않고, '나는 부자가 될 수 없어'라며 단정 지어 버리는 우리의 마음이다.
현재 당신을 현실에 안주하게 끔 하는 젖소는 무엇인가? 지금 한 번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 젖소를 절벽 아래로 떨어뜨려라. 젖소가 한 마리 없어졌다고 하여 당신의 인생이 파탄 나는 것은 아니니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기억하라.
'궁하면 변할 것이요, 변하면 통할 것이니, 통하면 영원하리라!'
오히려 우리는 가난하기 때문에 부자들보다 더욱 뜨겁게 부자가 되고 싶은 욕망을 불태울 수 있으며, 가난하기 때문에 부자들보다 더욱 다양한 각도에서 부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방금 읽으신 글은 여섯 번째 글입니다.
<글의 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