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무게는 인생의 무게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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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되는 방법(부자되는 월급쟁이와 가난한 월급쟁이의 가장 근본적인 차이) https://youtu.be/yBvqMJKZQNI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인생'이라 말한다.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이 있으며 그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는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만약 누군가 당신에게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싶습니까?"라고 묻는 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행여나 낭만주의 시대에 머물고 있는 10대라면, ‘사랑하는 그 사람과 함께 라면 그곳이 설령 시궁창이라도 상관없어요.’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경제활동을 하고 있는 2~30대는 다르다. 우리는 시련과 좌절이 일상인 현실주의에 살고 있다. 그리고 그 시련과 좌절의 원인은 대부분 돈에 있다. 따라서 우리들의 대부분은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싶어요.’라고 답할 것이다. 직설적으로 말해 부자가 되고 싶다고 말할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처럼 돈에 열광을 하는 것일까? 돈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 것일까?
사실 돈이란 것은 한낱 종이에 불가하다. 하지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시의 한 구절처럼 돈이라는 것도 사람들이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가치의 저장소’, ‘계산의 단위’, ‘휴대할 수 있는 권력’ 등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본래의 질문으로 돌아가, 우리의 삶에 있어서 돈이 얼마만큼의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필자는 돈의 가치를 인생의 무게와 같다고 말하고 싶다. 물론 누군가는 이 같은 표현이 다소 지나치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예를 들어 당신이 3천만 원을 주고 자동차를 구입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때 당신이 구입한 자동차의 가치는 얼마의 가치를 지닌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감가상각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가정을 하면, 자동차의 값으로 3천만 원을 지불했기 때문에 자동차에 대한 가치도 3천만 원이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 그 것이다.
앞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으며, 그것을 인생이라고 표현한다고 했다. 당신의 삶을 한 번 돌아보라. 하루는 24시간, 우리는 그중 1/3인 8시간을 노동한다. 만약, 야근 또는 출·퇴근 시간까지 포함한다면 그 이상 일수도 있다. 어찌됐든 우리는 노동의 대가로 돈을 받는다. 그리고 그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의 소중한 인생의 일부를 돈과 교환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돈이 자신의 인생과 교환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쉽사리 인지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들 대부분이 월급이라는 형태로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가 월급이 아닌 일급을 받는다고 가정을 해보자. 매월 200만 원이라는 월급을 받아 생활하던 사람은 하루에 약 6만 7천 원을 지급받을 것이며, 300만 원을 받아 생활하던 사람은 10만 원을 지급받게 된다. 그리고 오늘의 노동의 대가를 손에 쥐고 퇴근 후, 친구 또는 애인을 만나러 나선다고 상상해 보자.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회포를 풀고자 한다면 단연 소주가 빠질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소주란 녀석은 노릇노릇하게 익은 삼겹살을 쌈에 싸서 먹은 후에 한 잔 걸치는 것이야 말로 별미다. 평소의 우리들이라면 삼겹살 3인 분과 소주 한 병이라는 정석과도 같은 기본 주문에 대해서는 크게 부담을 가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별로 대수롭게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퇴근을 할 때 받았던 오늘의 노임으로 이 모든 것을 계산을 하려 한다면……. 거기다 대리운전을 부르거나 택시를 타고 집으로 가야 하는 상황까지 덧붙여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요즘 말로 ‘웃프다’란 표현이 제격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조삼모사(朝三暮四)라는 말이 있다.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라는 뜻으로 당장 눈앞의 차이는 있지만 결과는 매한가지라는 의미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사실 월급을 받든 일급을 받든 결과만 놓고 본다면 우리가 받는 노동의 대가에는 차이가 없다. 하지만 소비를 함에 있어서 일어나는 심경의 변화는 확연히 차이가 난다.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경우, 제 아무리 박봉이라 할지라도 5만 원 또는 10만 원을 하루에 쓴다고 하더라도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행여나 후회가 밀려올 듯하면, ‘꼭 필요한 지출이었어.’라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며 넘어가는 관대함을 보인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쓴 돈 보다 아직 남아 있는 돈이 많기에 심리적인으로 여유가 발동한 것이다. 하지만 일급을 받아 생활하면 평소에는 대수롭지 않게 쓰던 5만 원, 10만 원도 큰 돈으로 느껴진다. 현대인들의 필수품인 휴대전화, 그 휴대전화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루의 노동의 대가를 고스란히 통신비란 명목으로 지출해야 하며, 각종 세금과 공과금은 수일간의 노동의 대가가 투입된다는 사실을 깨닫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노동의 대가는 다름 아닌 자신의 인생을 팔아 얻은 결과물이 아니던가.
월급을 일급으로 환산하였을 때의 삶은 다소 낯설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일부를 포기하면서까지 얻은 돈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한다. 부자가 되는 길의 시발은 돈의 가치를 알고 그 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에 달렸다. 그럼, 여기서 잠시, 하나의 이야기를 빌려 가치와 활용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자 한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핸드크림에 대한 기록일지도 모른다. 바로 『장자』라는 책에 수록된 「불균수지약(不龜手之藥)」이라는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에 관한 이야기다,
옛날, 중국의 송나라(춘추시대 때의)에 솜이불을 빨아 생계를 이어가는 가족이 있었다. 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빨래를 해야 했기에 차가운 물에 손을 담가도 손이 트지 않는 신비한 약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그 마을을 지나던 한 나그네가 그 신비한 약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가족을 찾아가 말했다.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에 대한 처방을 제게 알려 주십시오. 그 대가로 황금 백 냥을 드리겠습니다."
황금 백 냥이란 돈은 평생 동안 솜이불을 빤다고 해도 벌 수없는 큰 돈이었다. 이에 가족들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자신들이 가진 기술을 나그네에게 팔았으며, 기뻐했다.
그 후, 나그네는 약의 제조공법을 손에 쥐고 동쪽의 오나라 갔다. 그리고 왕을 만나 자신을 장군으로 삼을 것을 청하였다.
때마침 이웃의 월나라가 군사를 일으켜 오나라를 공격했고, 찬바람이 몰아치는 겨울에 두 나라는 양쯔강 하류에서 수전(水戰)을 치르게 되었다. 장군이 된 나그네는 즉시 손을 트지 않게 하는 약을 대량으로 만들어 병사들에게 보급하였고, 오나라는 전쟁에서 크게 승리했다. 그리고 나그네는 그 공으로 인해 제후에 봉해졌다.
똑같이 손을 안 트게 하는 약인데, 누구는 그것을 가지고 제후가 되었는가 하면 누구는 평생 빨래하는 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처럼 같은 물건이라도 누구에 의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가치는 달라진다. 이것은 마치 한 교실에서, 같은 선생님에게, 똑같은 수업을 들었음에서 불구하고 1등과 꼴찌가 나뉘는 이치와 같은 것이다.
회사를 운영하는 사업가도, 장사를 하는 소상인도, 회사에서 다니는 근로자도 모두 일을 한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한 보상으로 돈을 받는다. 하지만 똑같이 자신의 인생 일부를 돈과 맞바꿨음에도 불구하고 누구는 부자로 살아가는가 하면, 누구는 가난하게 살아간다. 그 차이는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당신이 진정 부자가 되고 싶다면, 지금 당장 생각해 봐야 한다. 당신의 인생의 일부인 돈을 얼마나 가치 있게 활용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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