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여행하다 보면, 어느 순간 '욕조'가 생활 깊숙이 스며든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호텔이든, 작은 민박이든, 변변한 주방이 없는 집조차
대부분 욕실 안엔 어김없이 반짝이는 욕조 하나가 자리 잡고 있다.
그냥 몸을 씻는 공간을 넘어서, 일본 사람들에게 욕조는 '하루의 쉼표' 같은 존재다.
일본의 욕조 문화는 단순하지 않다.
샤워로 때우는 것이 아니라, 욕조 속에 몸을 담그는 건
그날의 피로를 지우고, 마음의 먼지를 털어내는 의식이다.
더러운 몸으로 잠자리에 들 수 없다는 오래된 습관,
하지만 그 속엔 더 깊은 마음이 있다.
“하루 동안 세상에 부딪히며 쌓인 피로를 욕조 속에 풀어두고, 다시 깨끗한 내가 되는 것.”
그렇게 일본 사람들은 욕조 안에서 하루를 마무리한다.
일본 열도는 지진과 화산이 만든 땅 위에 있다.
위험과 나란히, 따뜻한 선물도 따라왔다.
땅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나는 온천물.
벳푸, 하코네, 구사츠… 일본 곳곳엔 유명한 온천 마을이 있다.
하지만 온천을 찾는 이유는 단순히 '피부'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 친구, 때로는 낯선 사람과도 한탕 벗고 들어가는 그 공간 속에서
우리는 모두 같은 사람이 된다.
비즈니스도, 직책도, 사회적 거리도 모두 벗어두고
욕조 안에서는 평등한 휴식만 남는다.
일본 가정의 욕조는 생각보다 작다.
그럼에도 그 속엔 ‘정성’이 가득 담겨 있다.
씻고 나서 욕조에 들어가는 건 기본,
욕조 물은 온 가족이 나눠 쓰는 문화도 여전하다.
어쩌면 효율적이고, 어쩌면 조금은 불편하다.
하지만 그 불편함 속에, '함께'라는 감각이 조용히 녹아든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뜨거운 물속에서
아무 말 없이 하루를 정리하는 시간.
어쩌면 그건,
‘몸을 씻는 행위’가 아니라
‘마음을 다시 비우는 시간’ 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일본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하루를 어떻게 끝내고 있을까.”
그저 씻고, 눕고, 지친 채 잠드는 게 아니라
나를 정리하는 작은 의식을 매일의 끝에 두는 것.
그게 일본 욕조 문화가 우리에게 건네는 조용한 제안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