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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안 했지만, 밥값은 했다 – 에도의 기적

by 다다미 위 해설자

도쿄가 원래 뭐였는지 아십니까?

그냥 갯벌이었어요. 논도 없고, 밭도 없고,

사람도 별로 없던 바닷가 습지였다고요.


그런데 어느 날,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제부터 여기가 수도다” 하고 정권을 옮겨옵니다.

그 순간부터 이야기가 바뀝니다.



도쿠가와가 정한 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다이묘들아, 1년에 반은 에도에 와서 살아라.”


그게 뭡니까?

참근교대.

지방 영주들이 머슴, 요리사, 무사, 연주가까지 데리고

단체로 수도생활 하러 올라옵니다.

그게 한둘이 아니고, 수백 명씩 줄줄이.

이제 도시가 어떻게 되겠어요?



칼 찬 사무라이들, 전쟁은 잘해요.

근데 밥은요? 못 지어요. 안 지어요.

→ 밥은 사 먹고, 옷은 사 입고, 사람은 고용하고


그렇게 에도는 일은 안 하지만, 돈은 쓰는 사람들로 채워졌습니다.

→ 그리고 시장이 열리죠.



칼 찬 사람들한테 밥 팔려면 누가 필요합니까?

장인, 상인, 노점상, 요리사, 배우까지 줄줄이 몰려옵니다.


덴푸라를 튀기고


스시를 손으로 꾹 쥐고


가부키 공연하고


요시와라에서 위로를 나누고


책을 인쇄해서 팔고


이게 전부 도시 한복판에서 터진 산업이에요.

"칼은 칼집에, 돈은 시장에."

그게 에도의 공식입니다.



에도는 이상한 도시였어요.

논밭도 없고, 공장도 없고, 자급도 안 돼요.

→ 그럼 뭐로 굴러갔느냐?


전국 각지에서 물자를 들여왔습니다.

쌀, 채소, 목재, 생선 다 오사카에서 실어 날랐죠.

그래서 오사카를 ‘일본의 부엌’이라 부른 겁니다.


→ 에도는 만든 게 없지만, 사서 먹는 건 끝판왕이었어요.



문화는요.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겁니다.


에도에는 사무라이만 있었던 게 아닙니다.

하급 무사, 장인, 상인, 여자들, 외지인들까지.

그 사이에서 가부키가 유행하고,

출판물이 베스트셀러가 되고,

유머는 포스터처럼 가게 벽에 붙고.


이게 다 “사람이 많고, 돈이 돌고, 시간이 있는 도시”라 가능했던 일이에요.


일은 안 했지만, 밥값은 했다.

도시는 노동이 아니라 소비로 움직인다.

그걸 처음 보여준 도시가, 바로 에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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