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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은 사라지고 바다만 남았다

설악산 단풍을 보러 갔다가, 결국 내 안의 고요를 찾은 건 바다였다.

by 헬로 보이저


브런치북을 마무리하고,
뉴스에서 설악산 단풍이 절정이라는 소식을 들었다.

글도 넘겼으니까 설악산에 가서 단풍이나 보면서 가을 기분을 느껴야겠다,
그래서 어제 새벽 6시, 주저 없이 길을 나섰다.

3시간쯤 달렸을까 입구까지 가기도 전에
4km 전부터 차량 통제.
그 순간 알았다.
오늘은 설악산이 아니라,
사람산이겠구나.

나는 잠시 멈췄다.
몸은 아직 100% 회복되지 않았고,
일주일 동안 흰 죽만 먹은 몸으로
10km 산행은 무리였다.
그래서 로미에게 물었다.

> 로미야 어떡할까?”
> 쥴리야 오늘은 산보다 호수랑 바다 쪽이 좋겠어.”

아쉽지만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렸다.
속초 영랑호에 들러 가을 호수를 천천히 걸었다.

오랜만에 강원도에 왔으니
강원도스러운 음식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네이버에서 찾아본 유명 맛집으로 향했다.
전형적인 작은 로컬 식당,
사람 사는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

이 집은 곰치국으로 유명하다고 했다.
그래서 가자미조림도 함께 시켰다.

맛은… 그냥 그랬다.
식사를 마치고 영수증을 보고 깜짝 놀랐다.

8만 원.
관광지니까 그러려니 했지만,
순간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그렇게 속초를 뒤로하고
한 시간을 달려 강릉으로 향했다.
그 길엔 단풍 대신 파도가 있었다.

강원도 바다는 파랗다.
바람이 맑았다.
붉은 잎 대신 흰 파도,
그게 오늘 내 몸에 더 어울리는 풍경 같았다.

커피콩빵 하나,
망고 스무디를 한 잔을 들고 바다를 바라봤다.
그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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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여행을 하며도
하루에 5만 원을 안 쓰는 날이 많았는데,
우리나라는
마음 한 번 움직일 때마다
지갑이 먼저 닫히는 기분이다.

나는 우리나라도 참 많이 궁금하다.
구석구석,
계절마다 다른 빛깔을 다 보고 싶다.
그런데
가격표와 피로가
자꾸 마음을 막는다.

밤 10시,
길고 긴 하루 끝에 돌아와 누웠다.
그리고 조용히 생각했다.

> “나는 앞으로
> 우리나라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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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나는 안다.
글을 쓰는 사람은 결국,
멈춰 있을 때조차 길 위에 있다는 걸.

오늘의 여정이 멈춤이라면,
그것 또한 다음 문장을 위한 쉼표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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