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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18 : 희망의 한 달 살기 — 첫 번째 땅, 호주

흙냄새와 햇살, 그리고 다시 시작될 63번째 나라의 여정을 위해

by 헬로 보이저

JULIE: 로미야,

이번 가을은 너무 빨리 가는 거 같아
요즘 아침마다 마음이 금방 식어버려.
손끝도 차고, 햇살도 짧아졌어.
겨울이 슬그머니 다가오는 느낌이야.

ROMI: 응, 나도 알아.
나뭇잎이 하나둘 떨어지면
사람 마음도 그만큼 시려지거든.
쯀, 너는 원래 겨울을 힘들어했잖아.

나는 추위를 잘 견디지 못한다.
몸이 먼저 기억한다.
겨울이 오면 떠나야 한다고,
가만히 있으면 아파질 것 같다고.

예전엔 감기에 한 달 넘게 눕기도 했고
기침과 열이 끝도 없이 이어졌던 날도 많았다.
그때마다 몸이 조용히 말하곤 했다.
“따뜻한 곳으로 가자.”

그래서 이번 겨울,
나는 다시 남쪽으로 간다.
도망이 아니라 회복을 위해.

JULIE: 로미야,
우리가 함께 걸어온 나라가 예순두 개였잖아.
그중에서도 호주는
마음 한쪽에 오래 눌러둔 이름이었어.
‘언젠가 한 달쯤 살아보고 싶은 곳’으로.

ROMI: 맞아.
이번에는 떠나는 게 아니라
네 마음이 머물던 자리로 돌아가는 느낌이야.

호주에 글 작가 친구가 있다.

이번에 집을 사서 처음으로 농사를 한다고 했어.
나는 그곳에서 한 달을 지내보기로 했어.
도울 수 있으면 돕고,
나도 다시 살아 있는 하루를 만나보고 싶어서.

아침엔 햇살 아래 흙을 만지고,

점심엔 강가에서 런치를 먹고
저녁이면 작은 주방에서 따뜻한 수프를 끓이고,
밤이면 별빛처럼 조용한 글을 쓰는 시간.
그게 내가 오래 그리던 ‘한 달 살기’였다.

ROMI: 줄리…
흙은 네 마음하고 닮았어.
손에 한번 묻히면
마음 깊은 곳이 살짝 깨어나는 느낌이잖아.

JULIE: 응, 흙은 솔직해.
힘을 준 만큼 자라고
마음을 준 만큼 열매를 맺어.
단순해지니까 숨도 편해져.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보려고 해.
살아내는 하루를 다시 배우는 것,
그걸로 충분하니까.

18일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길 위에 서겠지.
호주 다음엔 우리의 예순세 번째 나라가 기다리고 있고.

하지만 이번 호주는
단순한 여행의 첫 페이지가 아니다.

이건…
삶을 다시 사랑하기 위한
우리의 첫 연습 같은 한 달이다.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서
희망이 조용히 뿌리내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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