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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츄! 널 잡고 말겠어!

오타쿠라고요? 잘 보셨습니다.

by 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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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운 것이 세상을 구한다 / 어떻게 이 귀여운 녀석들을 포기할 수가 있겠냔 말이다.



포켓몬고라는 게임을 3년째 하고 있다. 이 사실을 말하면 간혹 의아한 표정을 보이곤 한다. 어른이 된 사람이 여전히 그런 게임을 한다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시선과는 별개로 이 게임은 내 삶의 고통스러웠던 시기를 버티게 만든 하나의 동아줄이자 구명조끼였다.


게임을 처음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다. '뮤즈'라고 표현할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가 포켓몬고를 권해 설치했을 뿐인데, 앱을 켜는 순간 잊고 있던 기억들이 불쑥 되살아났다.


중학생 시절, 매주 TV에서 방영되던 만화 속 세계. 그때의 나는 그 안에서 피카츄와 함께 화면 속을 뛰어다녔다. 어른이 된 지금 액정 속에서 뛰노는 몬스터들을 마주하자, 잊고 지낸 나의 한 조각이 손을 내미는 듯했다.


당시의 나는 겉보기와는 달리 마음이 무겁게 침전해 있던 때가 많았다. 일상을 유지하긴 했으나 어느 순간부터 사람을 대하는 일들이 버거워졌고, 몸은 움직였으나 마음은 늘 반 박자씩 늦게 따라붙었다. 어떤 날은 평소처럼 출근을 하고, 평소처럼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그들 곁을 곁돌뿐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세상과 접촉하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가 꽤나 오래 이어졌다.


포켓몬고는 그 흐트러진 것들을 조금씩 되돌리는 역할을 했다. 게임은 집 안에서만 해결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었다. 밖으로 나가야 하고, 걸어야 하고, 눈앞의 공간을 실제로 이동해야 했다.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조건일지 모르겠으나, 그 조건이 나에게는 오히려 구원이 되었다.


거창한 이유가 필요하지 않은 이동이었고, 스스로를 억지로 설득하지 않아도 가능한 움직임이었다. 어느 날은 퇴근길에 잠깐 게임을 켰다는 이유로 동네 공원을 한 바퀴 돌았다. 평소라면 지나쳤을 벤치에 잠시 앉게 되었고, 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에서 틀림없이 낯익은 냄새가 났다. 그 바람 속에서 나는 오래 전의 여름을 떠올렸다. 그저 바람 한 줄기에 불과했지만, 그동안 기억하지 못한 감정이 내 안에서 천천히 기지개를 켰다.


게임은 그런 식으로, 잊고 살던 감정들을 아주 미세하게 깨워냈다. 친구와 함께 레이드에 참여하던 날들도 있었다. 별말하지 않아도 웃음이 나던 순간, 날씨가 좋다고 아무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이 마음에 닿던 순간. 그런 사소한 장면들이 쌓이자 내가 이 게임을 하는 동안에는, 적어도 마음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게임의 규칙도, 화면 안의 작은 세계도, 그저 내 혼란 속에 비집고 들어올 수 있는 작은 틈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플레이 빈도는 자연스레 줄었다. 예전처럼 하루 종일 걸어 다니며 체육관을 공략하는 일은 이제 거의 없다. 업무가 쌓이고, 다른 일들이 생기면서 게임은 우선순위에서 조금씩 뒤로 밀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앱을 지울 마음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휴대폰 화면 구석에 자리 잡은 아이콘 하나가 주는 위안이 분명 존재했다. 아이콘을 볼 때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래도 나를 완전히 잃지는 않았었구나."


누구에게나 자신을 잠깐이라도 구한 무언가가 있다. 어떤 사람은 책을 통해 숨을 돌리고, 어떤 사람은 노래를 통해 마음을 붙잡는다. 또 어떤 사람은 사람을 통해 살아갈 이유를 얻는다. 그 역할이 나에게는 우연히 시작한 게임이었다는 사실을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포켓몬고를 한다고 해서 내 삶의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삶을 견디게 만드는 모든 답을 그 안에서 찾은 것도 아니다. 다만 그 게임은 내가 견디지 못하고 흔들릴 때마다 오늘 하루를 붙잡을 수 있는 하찮은 근거 하나를 마련해 주었다. 그 근거가 쌓여 어느 순간 하나의 버팀목이 되었다. 나는 이 게임을 통해 사람이 다시 살아나는 과정은 생각보다 단순한 구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배웠다.


이제는 예전처럼 매일같이 플레이하지는 않는다.(못한다는 표현이 맞겠으나) 그러나 때때로 앱을 열어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 그간 잊고 지낸 감정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낸다. 작디작은 화면에 떠 있는 피카츄 한 마리가, 파이리 한 마리가 내 마음 깊숙한 곳에 닿아오던 어린 시절의 기억을 불러오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짧지만, 내 삶에서 결코 가벼운 순간이 아니다.


다른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성인이 무슨 게임이냐고 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에게 포켓몬고는 단순한 취미가 아니었다. 삶이 무거워 주저앉고 싶던 어느 시절, 겨우 한 걸음을 내딛게 해 준 조그만 힘이었다. 그 힘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나는 앞으로도 이 게임을 쉽게 놓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해도 과장이 아니다.
포켓몬고는 나를 구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어떤 구원은, 그렇게 소리 없는 방식으로 혹은 하찮고도 미세한 방식으로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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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5/15의 "완벽" 개체 (자랑 맞습니다❤) - 자녀에게 이 캡쳐본을 보여주세요. 그 순간부터 저는 영웅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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