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니었어.
낡은 동화책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봤을
아주 유명한 이야기지.
어느 한 마을에- 로 시작하는 빨간모자 이야기 말이야.
빨간모자가 늑대를 만났고,
늑대는 할머니를 잡아먹고,
그 뒤로 사냥꾼이 나타났지.
그리곤
결국 늑대는 그렇게 나쁜 놈이 된 채
동화가 끝이 나는...
그런데
그 이야기 속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늑대의 편지가 있어.
오늘 그 이야기를 들려줄게.
<늑대가 남긴 마지막 편지>
나는 늘 혼자였어.
숲에서 태어나, 숲에서 자랐지.
거무죽죽하고 뻣뻣한 털에
뾰족한 발톱,
무서운 눈
무서운 늑대, 나쁜 늑대
그게 바로 나였어.
처음부터 그렇게 태어나, 그렇게 자라야 했지.
그래서 나는 누구 앞에도 나설 수가 없었어.
대화하는 방법보다
숨는 방법을 먼저 배웠어.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었어.
누구라도 나와 눈이라도 마주쳐 준다면...
그걸로 행복할 것 같았지.
그러다 그 아이를 알게 된거야.
언제나 빨간 모자를 쓰고 다녔던 귀여운 소녀.
그 아이는 내가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어.
나를 보고 인사도 해줬어.
나는 이 세상을 모두 가진 것 같았어.
그때부터였어.
나는 그 아이의 걸음걸음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어.
몰래.
 ̄
어느 날, 그 아이가 말했어.
"우리 할머니 댁에 가는 길이야. 빵과 잼을 가져다 드려야 해."
나는 궁금했어.
할머니는 어떤 분일까?
빨간모자와 어떤 이야기를 할까?
혹시...
나도
친해질 수 있을까?
그래서,
그 애보다 먼저 뛰었어.
그리고 조용히,
할머니 집 창문 아래에서 몰래 엿들었던 거야.
작은 말소리가 들렸어.
그러다가 갑자기 조용해졌어.
문은 열려있었고,
그 안엔 아무도 없었어.
찻 잔에 온기와
빵에서 올라오는 모락모락한 김은
여전했지만
할머니는...
이미 이 세상 분이 아니었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어.
그런데...
갑자기 비명 소리가 들렸어.
그 아이였어.
나는 미처 숨지 못했고,
그 아이는 목 놓아 울어버렸어.
내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어.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어.
입을 떼어보려 했어.
"나는 아니야" 그 한마디면 되는 거였는데.
그런데 내 입은,
돌덩이를 삼킨 듯
움직여지지 않았어.
평생 숨는 법만 배웠던 나는
미처 말하는 법을 배우지 못한 채 살아왔는지도 몰라
그리고는 사냥꾼이 들이닥쳤지.
그 사람은 총을 들고 있었어.
총의 끝이 누구를 향했는지,
나는 알 수 있었어.
나는 겁에 질려 뒷문으로 달아났어.
숲 속으로
깊숙히, 깊숙히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달렸지
그날 이후,
나는 영영 나쁜 늑대가 되고만거야.
혹시 말이야...
내가 아니라고,
그때 말했다면
소녀는 믿어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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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편지는 숲 속 바위 틈에 숨겨져 있었고,
어느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었단다.
지금도 그 숲 어딘가에는
빨간모자의 소녀를 바라보던
말하지 못한 늑대의 눈빛이 남아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마음을 감춘 누군가를 만나게 된다면
조금만 천천히 눈을 바라봐줘.
그 안에,
모든 것이 담겨있을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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