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수능이 어렵다고 한다. 아이들이 문제를 못 푸는 이유는 공부를 안 해서가 아니라, 지문을 이해하지 못해서라고.
하지만 나는 이 말을 들을 때마다 한 가지 생각이 먼저 든다. 이 문제는 고등학생이 갑자기 맞닥뜨린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아이들이 지문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오래전부터 시작되어 있었다.
이미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같은 일이 반복되고 있다.
문해력 부족이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아이들이 지문을 이해하지 못하고, 문제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며, 질문을 끝까지 읽지 않는다는 이야기들. 하지만 이 현상을 단순히 독서량 부족이나 집중력 문제로만 설명하는 것은, 부모의 체감과는 어딘가 어긋나 있다. 아이들은 읽고 있다. 다만 이해하지 못한 채 읽고 있을 뿐이다.
국어학자들에 따르면 우리말 어휘의 약 60~70퍼센트는 한자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일상 대화에서는 잘 느끼지 못하지만, 교과서와 시험 지문, 설명문과 논설문으로 갈수록 이 비율은 훨씬 높아진다.
개념, 원인, 결과, 맥락, 추론, 비판 같은 단어들. 문해력이 요구되는 순간마다 등장하는 말들 대부분이 한자어다.
아이들이 글 앞에서 멈추는 이유는 문장이 길어서가 아니라, 단어의 뜻이 비어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한자 방과후 수업을 다녔다. 공부라기보다는 놀이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카드를 맞히고, 뜻을 연결하고,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자연스럽게 익히는 수업이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나는 한자가 이렇게 오래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는 이 시간을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한자어의 생성 원리를 배우며 즐겼다.
단어를 볼 때 뜻을 짐작하고 문맥 속에서 의미를 가늠하는 힘이 조금씩 쌓이며 배움의 기쁨을 느꼈던 것 같다.
나는 몇 번이나 한자 방과후를 그만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다른 활동을 해도 되고, 쉬어도 된다고. 하지만 아이는 한자를 놓지 않았다. 오히려 그 시간을 기다렸다. 전학을 가게 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아이는 한자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자격증을 따는 재미를 느꼈고, 단어를 안다는 감각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이 아이에게 한자는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이해하는 하나의 언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많은 부모가 묻는다. 그래서 한자가 성적에 도움이 되느냐고. ‘요즘 시대에 한자가 무슨 소용이냐’는 말도 함께 따라온다. 내 대답은 분명하다. 한자는 국어 점수를 올리는 기술이 아니라, 국어와 영어를 버텨내는 힘을 만들어준다. 요즘의 수능 국어는 더 이상 단순한 국어 시험이 아니다. 긴 지문을 끝까지 읽고, 전제를 파악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의 관계를 추론하는 시험이다. 어휘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면 문제는 다 읽었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영어도 다르지 않다. 난도가 높은 영어 지문에서 아이들이 막히는 지점은 문법보다 내용이다. 문장이 길어질수록, 추상적인 개념이 등장할수록 결국 필요한 것은 의미를 끝까지 따라가는 힘이다. 한자어를 통해 길러진 문해력은 이 지점에서 분명한 역할을 한다.
이 지점에서 떠오른 말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영어 강사인 조정식 선생님은 본인이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이지만, 자녀에게는 영어보다 한자를 먼저 가르치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 말이 인상 깊었던 이유는 영어의 중요성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언어를 이해하는 힘의 출발점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짚고 있었기 때문이다. 영어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영어 이전의 언어를 먼저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이 말은 오래 남는다.
국어 지문에서 개념어를 이해하는 힘은 영어 지문에서도 구조를 읽는 힘으로 이어진다. 언어는 달라도, 사고의 방식은 같기 때문이다.
이 글은 영어 조기교육을 부정하려는 글이 아니다. 영어는 분명 중요하다. 다만 나는 묻고 싶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너무 이른 시기부터 다른 언어를 요구하면서, 정작 자기 언어를 깊이 이해할 시간은 충분히 주고 있는가.
내 아이가 의대에 갈 수 있었던 이유를 하나만 꼽으라면 나는 문해력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그 문해력의 바탕에는 독서와 함께 차곡차곡 쌓여온 한자에 대한 이해가 있었다.
우리 아이는 중1 때까지만 해도 성적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학원은 물론이고 선행 공부를 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문제를 빨리 푸는 아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질문을 정확히 읽었고, 지문 속 단어 하나를 가볍게 넘기지 않았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 ‘왜 이런 표현을 썼을까’를 묻는 아이였다.
그 질문을 가능하게 했던 것이 바로 단어의 뜻을 아는 힘이었다. 한자는 암기의 대상이 아니었다. 사고의 발판이었고, 문장을 이해하는 토대였다. 문해력은 독서량으로만 길러지지 않는다.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층위가 깊어질 때, 독서는 비로소 생각의 공간이 된다. 어쩌면 지금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영어가 아니라, 조금 더 천천히 뜻을 배우는 시간인지도 모른다.
뜻을 이해하는 언어 위에서만, 다른 언어도 제대로 자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