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수능 영어, 잃어버린 읽는 힘

by 이채이

수능 영어를 지나온 아이들, 그리고 우리가 잃어버린 ‘읽는 힘’에 대하여

올해 수능 영어가 끝난 날, 아이들의 표정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었다.

문제를 다 풀고도, 왜 이렇게 어려웠는지 정확히 말하지 못하는 표정.

“단어가 어려웠나?” 이 물음에 아이들은 고개를 저었다.

“근데…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흐름을 따라가기가 힘들었어요.”

나는 그 대답이 오히려 정답처럼 들렸다.

올해 시험은 영어라는 언어의 장벽보다, 그 너머에 있는 ‘읽는 힘’을 시험한 해였다.

글이라는 숲에서 길을 잃는 순간, 지문을 펼치면 단어들이 촘촘하게 박혀 있다.

그러나 학생을 주저앉힌 건 생소한 단어가 아니었다.

그보다는 문단과 문단 사이에 숨어 있는 아주 작은 길의 방향표지들이었다.

그러니까, ‘그러나’가 무엇을 뒤집는지, ‘예시’가 어떤 생각을 지지하는지,

마지막 문장이 왜 갑자기 새로운 조건을 던지는지.

그 작은 신호를 읽어내지 못하면 글은 금세 미로가 된다.

올해 미로는 유난히 깊고 복잡했다.

문제를 틀리는 이유는 영어가 아니라 ‘생각의 흐름’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영어 단어를 외우라고 말한다. 긴 독해 지문을 빠르게 해석하라고도 말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글이 어떤 논리로 움직이는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어떤 답을 찾아가는지 ‘사고의 길'을 따라가는 능력이다.

그 능력은 외국어에서 갑자기 자라나지 않는다. 이미 모국어 독서에서 싹을 틔워야 한다.

올해 수능 영어는, 그 싹이 제대로 자라 있는지 조심스레 확인하는 시험 같았다.

독서력은 언어의 집을 넓히는 일이다

우리는 글을 읽을 때 단순히 단어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다.

글의 구조를 파악하고, 논지를 좇고, 숨겨진 의도를 감지하고,

결국 글쓴이의 마음속 지도를 따라간다.

이 복잡한 흐름을 읽어내는 힘은 책 속에서 조금씩 자란다.

심리학 한 장을 읽으며, 생태학 칼럼을 읽으며 근거와 결론의 관계를 자연스레 파악하게 될 때,

영어 지문 속 논리도 비로소 익숙한 풍경으로 여겨진다.

독서는 언어를 바꾸어도 흔들리지 않는 생각의 골격을 만들어준다.

우리가 다시 읽기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

나는 요즘 독서가 영어 공부에 왜 도움이 되는지를 기술적 이유로만 설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보다 더 본질적인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읽는다는 것은 결국 ‘다른 이의 마음과 생각의 구조를 빌려보는 일’이다.

그 경험을 많이 한 아이는 글 앞에서 덜 두려워하고, 언어가 바뀌어도 당황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말하고 싶다.

영어가 어렵다면 영어 단어장을 펼치기 전에 먼저 책 한 권을 펼치라고.

한국어 문장 속에서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는 연습을 충분히 한 아이만이

외국어의 숲에서도 길을 잃지 않는다.

결국, 수능 영어의 문은 ‘독서력’이 연다

올해 수능 영어가 어려웠던 이유는 단순하다.

영어가 어려워진 게 아니라, 글을 읽는 힘이 필요해지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독서력은 어느 날 갑자기 자라지 않는다.

매일 조금씩, 한 문단씩, 한 문장을 곱씹는 시간 속에서 천천히 자란다.

그리고 그 힘은 시험지를 넘어 아이의 평생을 지탱해줄 가장 깊은 뿌리가 된다.

P.S - 내년 영어 시험이 쉬워질까? 쉽다는 말은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이다. 절대평가가 더이상 절대쉬운 평가라 생각하면 안될 것이다. 수능성적이 발표되고, 아이들에게 더 많은 사교육을 시키겠다는 학부모의 인터뷰가 있었다. 심정적으로 이해가 가지만, 그것만이 최선일까? 웃음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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