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신에 대한 이야기를 반복하고 되새겼을 때 감정이 응고되어 마침내 형상을 얻는 행위다. 이는 신과 인간 사이에 공유되는 서사 같은 것인데, 서사가 논리를 갖춘 채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면, 용해된 믿음의 찌꺼기는 눈물이 되고 감동이 되어 믿는 이의 마음을 맑게 씻는다.
신은 인간과 믿음의 그 경계에 서 있다. 이것이 진짜 신의 신통력인지 갈구하는 자의 마음에서 파쇄된 침전물인지 아직 알지 못한다.
두렵고 무서운 것을 애초부터 철저히 차단함으로써 평화를 가지려는 태도. 믿음은 그런 식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닐까. 두려움과 마주하고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외려 그사이에 아무것도 파고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 스며들 틈조차 없게 만드는 것. 믿는 자의 기도는 그 입구를 말로 막는 일이다.
믿는 자는 그것을 극복한 것이 아니라, 애초에 봉쇄해 버린 것은 아닐까.
기도는 두려움을 다루지 않는다. 다만 그것을 언급조차 하지 않음으로써 마치 존재 자체가 없었던 듯 감춰버린다. 이 감춤은 제거가 아니라 봉쇄에 가깝다. ‘봉쇄한다’는 행위는 봉쇄할 무엇이 있다는 것을 안다는 것이고, 그 무엇은 자신이 감당 못할 대단한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다 보니, 믿음은 무엇을 이겨낸 증표가 아니라, 오히려 ‘무엇이 있음’을 아는 자의 공포에서 비롯된 방어막은 아닐까 싶다.
겹겹의 창호지를 발라서 숨구멍만 한 틈까지 밀봉하는 것이 믿는 자의 작전이다. 창호지와 창호지를 덧댄 그 얇고 투명한 지지의 사이, 바람도 통과 못할 경계선에 신이 깃든다. 신에 대한 인간의 믿음은 위태롭고 가벼운 것이어서 매 순간 덧대고 칠해야 겨우 신심을 유지할 만하다.
신이 있다면, 그에게 순응하는 것이야말로 평화로운 삶을 보장받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한 번도 반문하지 않은 채 흔들림 없는 마음이 있을 수 있을까?
나의 할머니는 일생동안 이질적인 믿음 사이를 오갔다. 주지 스님이었던 할아버지의 불경과 목탁 소리를 들은 탓에 붓다는 그녀 삶의 근원에 자리 잡았다. 그 믿음은 신중하게 다루어져야 할 무엇이었다. 새의 둥지에서 새알을 꺼내듯 그렇게 꺼내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보호되어야 할 무엇이었고 소중히 다루어야 할 무엇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붓다의 형상은, 일상의 기도 속에서 늘 현실적인 요구와 뒤섞이곤 했다. 할머니의 기도는 기복적이었다. 그것은 자기 긍정의 다짐이라기보다는 복을 구걸하는 행위였다. 그 요구사항은 콩밭의 잡초처럼 직설적이기도 했고, 때로는 달나라의 계수나무처럼 허황되기도 했다.
원시 종교가 그러하듯 자신의 필요에 따라 믿음의 대상은 수시로 바뀌었는데, 붓다는 산신이 되기도 하고 조앙신이 되기도 했고 달님이 되기도 했다. 믿음의 방향은 계통이 없고 깊이도 없이 필요에 따라 옮겨 다녔고, 나는 종종 할머니가 온갖 잡신을 불러 모은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어머니는 고통받았다. 젊어 시집온 어머니는 할머니가 무분별하게 불러들인 잡신의 농간에 평생을 고통받고 있다. 밤이면 어디선가 드르륵 소리가 들렸다. 우리 집엔 미닫이문이 없었는데도 말이다. 몇 사람의 목소리는 부스럭거렸고, 그 소리는 초저녁이든 새벽이든 끈질기게 찾아왔다.
어머니는 잠들지 않았다. 자식들을 지키기 위해, 어둠 속에서 스스로 야경꾼이 되고 경계병이 되었다. 그녀는 스스로의 몸을 병풍 삼아 우리를 가로막아 지켜냈다.
그것이 실제였는지, 혹은 고통이 만들어 낸 환청이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머니는 그것을 확실히 ‘존재하는 공포’로 경험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십자가를 목에 걸고, 성경책을 가슴에 얹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믿음이라기보다는 간절함이 그린 부적처럼 보였다. 어머니의 고통은 현재 진행형이다. 그녀가 막아낸 세월의 참상은 말로 쉽게 전해질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그 고통은 아마 죽음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불안을 그녀에게 남겼다. 그것이 그녀가 가진 근원적 두려움일 것이다.
나는 그 두 여성의 믿음을 지켜보며 자랐다. 할머니는 두려움을 방어적으로 봉쇄하면서도 구원의 통로를 끊임없이 찾았고, 어머니는 그것을 현실로 맞서며 견뎠다.
나는 아직도 누구의 품에 기대야 하는지, 어떤 기도의 말이 나를 위로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한다. 다만 이 두 여인이 총총히 엮어온 믿음의 사슬을 이제는 끊어야 할 때라는 것을 짐작할 뿐이다. 눈물로 엉겨 붙은 믿음의 서사가 씻어 낼 맑디맑은 순간을, 나는 기대하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