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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모르는 게 약, 그러나 걸어봐야 아는 길

뉴욕 퀸즈보로 브리지에서 생각한 것들

by 백현선

매번 브루클린 브리지를 도는 코스로 달리다가, 하루는 문득 방향을 바꿔 루즈벨트 아일랜드를 건너 달려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번엔 퀸즈보로 브리지로 코스를 바꿨다. 그런데 웬걸, 같은 10마일인데도 평소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경사에 숨은 금세 가빠졌고, 종아리와 발가락처럼 평소엔 신경 쓰지 않던 부위까지 근육 피로가 몰려왔다. 강 건너의 반환점은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구간은 뉴욕 러너들 사이에서 ‘마의 구간’으로 불린다고 한다.


운동을 마친 뒤 문득 생각했다. 만약 이 길이 그렇게 힘든 구간이라는 걸 미리 알았다면 어땠을까? 아마 알았더라도, 결국엔 직접 뛰어보고 나서야 판단했을 것이다.


<오징어 게임> 시즌 1에서 상우가 성기훈에게 외친다.

“똥인지 된장인지 꼭 처먹어 봐야만 아는 인간이니까.”


나도 그런 구석이 있다. 영화관이나 식당에서 엉뚱한 메뉴를 고르거나, 선택의 기로에서 조언을 흘려듣고 종종 손해를 보기도 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상우 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확실함을 경계하고 피하려 하니, 그럴 만도 하다. 하지만 그런 선택이 의외로 좋은 경험으로 이어지는 순간도 분명 있다.


물론 다수가 향하는 길을 따르면 맞을 확률이 높고, 손해 볼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러나 나는 타의에 의해 내린 선택에서 만족을 느낀 적이 많지 않았다. 감당해야 할 손해보다, 그로 인해 선택하지 않은 것들에 대한 미련이 더 컸다.


생각해 보면, 익숙한 루트만 반복하는 러닝과 다르지 않다. 편안함 속에서는 안전하지만, 그만큼 새로운 풍경과 미지의 가능성은 멀어진다. 전에는 없던 근육통이 비록 효율은 떨어질지라도, 쓰이지 않던 부위의 성장을 알려주듯이 말이다.


현대 사회에서는 취향뿐 아니라 진로나 가치관처럼 본질적으로 개인의 사유가 필요한 영역까지 ‘집단 지성’이라는 이름 아래 획일화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럴 때마다, 아직 걸어보지 않은 길들이 지도에서 하나씩 지워지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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