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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원 5일 차, 59.7%의 무게

CENSUS2025


1. 베테랑의 등장

협택 조사의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 관리자님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답하셨다.

직접 나의 일터로 오신 것이다.

공동현관 앞에서 관리자님은 후레시를 들고 사방을 살폈다.

비밀번호가 어딘가 적혀있을까 하는 오랜 경험에서 우러난 본능이었다.

하지만 없었다.

그 순간, 관리자님은 건물 앞 주차된 차량에 적힌 전화번호로 주저 없이 전화를 거셨다.

"안녕하세요, 인구주택총조사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공동현관 비밀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나는 깜짝 놀랐다.

차주님은 선뜻 비밀번호를 알려주셨다.

경험과 당당함이 만들어낸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2. 프로의 속도

조사를 시작하자, 관리자님은 나의 절반 속도로 천천히 진행하셨다.

처음엔 의아했다. '역시 전문가는 다르다'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응답자가 대답할 때마다 건네는 그 따뜻한 맞장구, "호흥~", "아, 그러시구나"가 신뢰를 만들고 있었다.

두 분이 사는 집에 한 분만 계실 때, 나는 한 분만 조사하고 말았다. 하지만 관리자님은 달랐다.

"같은 직장 다니시죠?"

공통사항을 파악하고, 대략적으로 적어둔 뒤 나중에 수정하는 방식. 효율과 완성도를 동시에 잡는 노하우였다.


3. 목소리의 무게

"죄송한데요, 밤이라 목소리 좀 낮춰주실 수 있을까요?"

관리자의 부탁에 응답자님은 자연스럽게 목소리를 낮추셨다.

그 순간 나는 뜨끔했다. 며칠 전, 한 남성분이 나에게도 같은 말을 했었다.

"목소리 좀 맞춰주세요."

나도 안다.

내 목소리가 크다는 것을.

돌발성 난청으로 한쪽 귀가 들리지 않아, 본능적으로 나는 항상 큰 소리로 말한다.

바닷가 마을 사람들처럼. 안 들리는 노인처럼

하지만 밤늦은 아파트 복도에서, 그 목소리는 민폐가 된다.

조심해야지


4. 현장이 가르치는 것들

인터넷 강의와 현실은 달랐다.

응답을 거부하며 따지는 분께 공문서를 차분히 보여드리며 설득하시는 관리자님의 모습에서

나는 진짜 프로를 보았다.

"조사율 낮은 협택부터 평균 올리려고 신경 쓰고 계시죠? 아니에요. 실적 높은 곳부터 채워야 합니다."

전략까지 달랐다. 9시가 다 되었을 때, 관리자님은 말씀하셨다.

"저는 퇴근할게요. 아파트 가보세요."

"9시 넘으면 뭐라 하시는데..."

"괜찮아요. 가보세요."


5. 작은 보상들

마음 졸이며 아파트를 돌고 있을 때, 승강기에서 할머니 한 분이 반갑게 인사하셨다.

"오늘도 또 오셨네요!"

"설문조사 이벤트 있잖아요. 제가 당첨됐어요! 3만 원 쿠폰 받았다고요. 고마워요."

할머니의 환한 미소. 그 순간만큼은 내가 받은 선물처럼 정말 기뻤다.

힘든 하루의 피로가 조금 사라지는 듯했다.


6. 발끝의 통증과 질문

하지만 10시가 넘어서까지 QR코드 유도 종이를 붙이며 돌아다니자, 발가락이 아파왔다.

'도대체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 거지?'

조사원 5일 차. 59.7% 진척률. 이대로 5일만 더 하면 100%가 될까? 힘들다.


7. 경험이라는 선물

기숙사로 쓰이는 협택에서 두 분이 사시는데, 한 분만 대답하고 한 분은 목소리만 들렸다. 나중에 그분이 나오시더니 말씀하셨다.

"젊었을 때 나도 이 알바 한 적 있어요."

불쌍해 보였는지, 옛날 고생했던 자신이 생각났는지, 그분은 친절히 대답해 주셨다.

경험은 정말 중요하다. 누군가의 과거가 누군가의 현재를 이해하게 만든다.

조사원 5일 차의 기록
진척률 59.7%
아픈 발가락
그리고 여전히 남은 질문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하지만 할머니의 미소와, 옛날 조사원이었던 그분의 따뜻함이 답을 준다.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 하고, 오늘은 그게 나다.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나는 작은 인연들이, 이 일을 견딜 만하게 만든다.

하지만 이 알바는 이번이 마지막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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