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청년 예술인X기획자 아카이빙 취재 : 유명진
놓치기 아까운, 사라지기 직전의 흐름이나 작은 빛을 잡아 그려내는 손지원입니다. 고정된 설명으로 읽히길 피하고자 여러 요소들을 중첩시킵니다.
2. 어떤 활동, 작업을 하시나요?
문득 시선이 갔던 순간들을 그려내지만, 너무 밝지도 어둡지도 않게 중간을 유지하려고 합니다. 일상에서 주로 발견한 빛이나 길처럼 느껴졌던 것들을 재구성해 작업해요. 느껴진다라고 말하는 건 실제로 빛나는 것이나 길이 아니더라도 제가 그렇게 인식했던 것들을 그려내기 때문이에요. 스스로 내는 빛이 아니더라도 벌레의 날갯짓이나 유리 조각 아니면 걷다가 시선을 사로잡는 반짝임들이 있고, 잘 닦인 길이 아닐지라도 나뭇잎 사이로 비친 빛들로 인해 길이 보이는 거죠. 저는 존재하지 않는 또는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이게 하거나, 반대로 보여야 할 대상을 보일 수 없는 것처럼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그 모호함, 명확하지 않은 걸 제일 중점을 두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한 장면만 놓고 봤을 때 노을인지 새벽인지 구분이 안 되는 게 있잖아요. 예전에는 그 시간대가 편안하게 느껴져 안식의 공간이라는 생각을 바탕에 두었다면 지금은 불분명함에 더 집중해 작업을 하고 있어요. 밤을 새우고 새벽에 첫차를 타고 가면 하늘이 노을인지 새벽인지 분간이 안 갈 때가 있더라고요. 그럴 때 한참을 보게 돼요. 사람들이 막 일을 시작하려는 시간인 동시에 제 하루는 끝나는 시간이 맞물린 모호한 경계의 시간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사람들이 이러한 모호함들을 자세히 눈여겨 봤으면 해서, 특정이 되는 인공물들을 피하고 변화가 다채로운 자연물을 더 소재로 하기도 하고요. 모호함을 더 살리기 위해서 실제와는 다른 색을 사용하거나 다양한 색을 겹쳐 사용하기도 합니다. 작은 빛이지만 다양한 색이나 감정이 숨어있다는 생각에서요. 하나로 정해놓지 않음으로써 관람객의 시선마다 작품이 다르게 보였음 좋겠어요.(웃음) 저라는 사람뿐 아니라 작품에 대해 단정 짓고 쉽게 넘기는 게 싫은 것 같아요.
또 제가 혼자 주변을 산책하거나 일부러 사람이 안 다니는 곳을 다니거든요? 양림동에 있을 때 천변에 많이 가서 물풀들이 자라는 모습도 자주 봤었는데, 홍수가 나니까 다 휩쓸려 나가고 뽑혀 있는 거예요. 되게 위험했었죠. 그런데 그러다가도 시간이 지나니 물풀이 자라있는 걸 보고 순환 과정을 많이 생각했던 것 같아요. 대상들이 다 서로 연결되어있다는 걸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연결도 같이 보여주고 싶어서 먼지와 ―우주적 시선에서 봤을 때 저희도 다 먼지라고 느꼈어요― 이어지게 그리고, 이 모습이 순환 과정 중 일부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쌓이는(생성) 것인지 흩날리는(소멸) 것인지도 구별이 안 되게 그렸었네요. 경계는 불분명하게 하되, 전부 순환 과정 속에 위치해 연결이 되게끔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다양한 가능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로 명시돼 버리면 그걸로 끝이니까 계속 경계를 흐리고 여운에 더 중점을 두는 거죠.
- 작업을 통해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희망적인 것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이 빛이 작지만 그래도 빛나고 있구나. 여기가 어디든, 옆에 있다는 것을요. 기억이 안 나서 또는 지나가서 끝이 아니라는 것을 말하면서 저는 그것들이 사라지기 직전을 붙잡아두려는 것 같아요. 자연도 보면 순간순간 바뀌어 있고, 일상도 바쁘게 살다보면 그저 지나쳐가는 듯하지만 계속 기록하고 바라보면 좋더라고요.
놓치기 쉽지만 마냥 놓치기는 아까운 순간들의 소중함을 보여주고 싶어요.
- 작업할 때 가장 신경쓰이는 점이 있다면?
재료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해요. 원하는 표현이 잘 나올지, 혹여 이후에 변질 우려가 있지는 않은지. 그리고 작품의 의미가 재료랑도 이어져야 한다는 생각이 있어요. 우연성을 다루는 작품이라서 번지는 재료를 사용하는 식으로 내용과 표현 방식이 맞물리게끔요. 그런데 이렇게 번지는 효과같은 경우는 어떻게 번질지 계속 지켜봐야되고 또 제가 다듬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저도 모르게 너무 힘을 주어 다듬고 정리하려는 습관이 있는데, 힘을 빼서 덜어내는 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자꾸 묘사를 꽉 채우려고 하는데, 더 덜어내서 재현에 가까워지지 않게 노력하려고 해요. 가능하다면 지금 작품들보다도 더 흐릿하게 만들고 싶어요.
거창한 목표는 없고 지금의 작업을 충실히 하고 조금씩 넓혀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새로운 방향을 찾고 싶네요. 작업 외적으로는 작품명이나 전시명을 어디서부터 시작되고 어디서 끝나는지 구별 안 되게 여지 주듯이 해보고 싶어요. 목적어가 없다든가 아니면 문장이 완결되지 않은 상태의 이름을 짓는다든가, 개인전 제목이 《순간의 빛일지라도》였는데 이걸 다음 전시 문장이랑 연결되게 지어보면 어떨까 해요. 작품을 위해 찍었던 사진을 작품과 같이 배치한 작품집도 만들고 싶네요! 사진의 어떤 부분을 재구성했는지, 어떻게 완성의 과정까지 왔는지요. 작업하면서 메모했던 기록이나 문학 구절을 활용해서 같이 즐길 수 있게 도전해 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제가 작품 양도 늘리고 부지런해야 될 것 같네요.(웃음)
그리고 레지던시를 하면서 전시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 안에서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얻는 게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러다보니 여유 된다면 다른 지역 레지던시도 한번 신청해보고는 싶은데 기회가 될지 모르겠어요. 뭔가 짧게 몇 개월이라도 타지에서 살아보며 다른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긴 해요. 이 인터뷰도 부딪혀봐야겠다 해가지고 하게 됐어요. 남들은 능숙하게 잘하는데 저는 피하기만 하면 조금 아쉽더라고요.
아직은 지금 하는 작업들을 ―전에 펜으로 찍으며 표현했던 순환의 모습들을 유화나 혼합재료로 다시― 하고자 하지만, 영상도 약간 궁금은 해요. 제 작품을 영상 느낌이 날 수 있게끔 빛들이 살짝씩 반짝인다거나, 벌레나 유리 조각, 돌멩이라든가 거미줄에 맺힌 물방울처럼 햇빛에 잠깐 비춰진, 갑자기 드러난 존재들을 영상으로 나타내면 어떨까 궁금해요. 아니면 같은 작품 이미지 안에서 시간대나 계절의 변화가 드러나는 방식으로요.
콜라보 같은 경우는 사라지고 상실되는 것들을 다루는 작가님께서 협업 제안을 해주셔서요. 제가 사라지기 직전이나 사라져 가는 걸 좀 붙잡는 작업을 하니까 상호 보완이 될 것 같아 기대하고 있어요. 각자의 작업이 만나서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내는 식의 콜라보를 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본업인 작업을 부업처럼 하게 되는 걸 경계하고 있어요. 그림을 하려면 돈을 벌어야 되니까 일을 했는데 시간을 너무 많이 뺏기더라고요. 내 작업을 하고 싶은데 하지도 못할 바에야 일을 하지말자, 저는 돈보다는 시간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더라고요. 어떻게 하면 그림을 오래 할 수 있을까 현실적인 고민을 하고 있네요.
당장은 생각을 해 본 게 오래 예술을 하려면 건강해야 되겠고, 꾸준히 해내는 끈기가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작품이라고 말하려면 어떻게든 끝내야하니까요. 정말 밤을 새서라도 완성해야지, 작품을 전시장에 미완성으로 거는 건 상상도 못 하겠어요.
그리고 작품에서 길이 아닌데 길처럼 느껴졌던 것들을 그린 것처럼, 저 역시도 길을 만들어 개척해 나가야 된다는 생각인 것 같아요. 길이 아닌 곳이나 예상치 못한 경로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 현재에 충실하며 새로운 가능성을 찾고 싶어요.
꾸준히 작업하면서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 작가였으면 좋겠어요. 남한테 맞춰주거나 성실하게 보이려고가 아니라 저 자신이 자연스럽다고 느끼면서 하고 싶은 걸 하는 작가이고 싶어요. 그게 제일 좋을 것 같아요.
인터뷰를 마치며
없어질 것을 예감했음에도 그 작은 빛을 놓치지 않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준다. 사소한 시도로 손을 뻗게 하고 모르는 곳으로 발을 딛게 한다. 손지원 작가님과의 인터뷰를 하고 난 뒤부터 나도 자주 보던 풀숲의 반짝임을 신경 쓰게 되었다. 단 하루도 같은 날이 없던 풍경을 이제야 찬찬히 들여다보며, 내진 길이 아니라 다른 곳을 바라보기 시작하였다. 그러다 어느새 달갑지 않던 작렬하는 태양빛과 질긴 풀에 조금은 더 강한 사람이 되었음을 느꼈다.
인터뷰어 : 유명진
사회의 이슈를 외면하기에는 조금 예민하고 주변에 편재한 문제를 느끼기엔 조금 둔감한 어중간한
사람으로서 붕 뜬 생활을 하고 있다. 사람으로 연결되는 감각을 좋아하여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한쪽에 완전히 속하지 못한 애매한 감각으로 기준선에서 삐죽 튀어나온 부분을 그러모아 전시 기획을 한다. 기획한 전시로는 《통 속의 추구미 너머》(2024), 《단면의 총합》(2023), 《보물찾기: 빼앗긴 호기심을 찾아서》(2023) 등이 있다.
본 인터뷰는 2025년 광주광역시 지속가능발전협의회 문화특별의제
‘문화 네트워크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되었습니다.